중앙정보부(1961년 창설), 국가안전기획부(1981년)를 거쳐 김대중 정부 때인 1999년 1월 국가정보원으로 거듭난 국정원의 존재이유는 두 가지다. 고영구(高泳耉) 국정원장 후보자도 22일 인사청문회에서 “국정원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정치 경제 해외정보를 정확히 수집해 대통령의 판단을 돕는 곳이다”고 국정원의 두 가지 역할을 강조했다.
중정이나 안기부는 차치하더라도 국정원에 대해서도 비판적 시각이 많다.
일부 국정원 조직이 권력에 맹목적인 충성을 하고, 권력 줄 대기에 치중한다는 것이 비난의 핵심이다. 이는 법과 제도보다 집권자의 의지에 따라 국정원이 좌우되는 권력 환경이 일차적 이유지만 대통령의 뜻을 받드는 기관이라는 국정원의 그릇된 ‘자부심’이 몰고 온 결과이기도 하다.
정보기관의 권력 줄 대기 풍토는 권력교체기 때의 내부정보 유출로 이어졌고, 특히 YS, DJ 정권 출범 직후엔 스스로 ‘내부 숙정(肅正)’을 하기도 했다. 국민의 정부 출범 직후에는 ‘직원 윤리헌장’까지 만들어 탈(脫)정치를 시도했지만 만족스러운 효과는 거두지 못했다는 평가다. 이 때문에 국정원 내부, 특히 해외파트에선 “일부 정치꾼 때문에 목숨을 걸고 일하는 전체 조직이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다”며 불만을 터뜨리기도 한다.
국정원의 조직과 인원, 예산은 베일에 감춰져 있다. “공개될 경우 정보능력의 윤곽이 드러나기 때문에 지구상에 전례가 없다”는 것이 국정원의 설명.
전체인원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22일 고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한 의원이 ‘2000명 감축설’을 제기한 것으로 볼 때 그보다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국정원 예산에 ‘의혹’의 시선이 쏠리곤 하는 것은 한국적 정치풍토 때문이다. 국정원 예산은 정보기관의 특성상 영수증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여지가 높다. 전직 국정원 관계자는 “국정원 예산은 대통령비서실 활동지원비 등 통치자금으로 쓸 수도 있다”고 말했고 최근 대통령직인수위 관계자는 사석에서 “연간 1000억원은 (통치자금으로 돌리는 것이) 가능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96년 15대 총선을 앞두고 당시 안기부 예산 1200억원이 한나라당 총선자금으로 사용된 것으로 드러나 그런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국정원은 98년말 예산 180억원을 국고에 반납했다. 당시 국정원은 “통치자금을 쓰지 않고 남긴 돈”이라며 구태 벗어나기 사례로 홍보했다. 그러나 이후의 예산운용 상황은 알려진 것이 없다.김승련기자 srkim@donga.com
▼개혁방향▼
고영구(高泳耉) 국가정보원장 후보자는 22일 국회 정보위원회의 인사 청문회에서 국정원의 틀을 유지하되, 인권침해 소지를 없애도록 조직과 권한을 일부 조정하는 방향으로 국정원을 개편하겠다고 밝혔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와 청와대 일각에서 검토해온 국정원 개편안, 즉 국정원을 국내정보청과 해외정보처로 분리해 정치개입 시비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대북 및 국제정보 수집 업무에 주력하도록 한다는 개편시안은 채택되지 않았다.
고 후보자는 “정보업무를 국내, 해외분야로 구분하기 어렵고 예산낭비가 우려되며 분리하더라도 이를 조정-통할하는 기구가 필요하다”고 분리반대 이유를 설명했다.
국정원은 그 대신 그동안 정치개입 시비의 ‘진원지’로 지목돼온 대공정책실을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국정원 관계자는 “산하에 정치단 언론단 경제단 등을 포괄하고 있는 대공정책실을 폐지하되 경제정보 강화 차원에서 경제단은 경제국으로 승격시키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며 “이 경우 국내담당 차장은 대공수사국 경제국 외사보안국만 관할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고 후보자는 “정치인 및 고위공직자 동향보고 등 국가안보와 관련 없는 사찰 성격의 정보 수집을 없애고 부처 및 언론사 등에 대한 출입관행도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고 후보자는 북한과 관련 없는 국내 보안사범에 대한 수사권을 검찰 경찰로 이관, 국정원 직원의 권한 남용에 의한 인권 침해를 차단하겠다는 의지도 분명히 했다. 그러나 “국정원의 정보수집을 대북-대외 정보에 국한해야 한다”는 여권 일각의 주장에 대해서는 반대입장을 보였다.
그는 또 내부 통제를 엄격히 하기 위해 자체 감사 기능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국정원 내에서는 내부 감사를 담당하는 감사관에 대해 국회 정보위의 추천 동의를 거치는 등의 방법으로 신분을 보장하고, 회계사 등 전문가를 특채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고 후보자는 국정원장의 대통령 독대보고 폐지에 대해서는 “필요에 따라서는 직접 보고드릴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반대의사를 밝혔고, 정부 부처에 대한 정보-보안업무의 조정권 및 신원조사권 폐지에 대해서도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윤승모기자 ysm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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