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先핵포기' 조건 포기했나

  • 입력 2003년 4월 28일 18시 49분


지난해 10월 북한이 농축우라늄을 이용해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고 밝힌 이후 미국이 절대 양보할 수 없는 마지노선의 하나인 것처럼 주장해온 ‘북한의 선(先) 핵 포기’ 조건이 슬그머니 사라졌다.

더구나 ‘불가침협정 체결 완화’ ‘핵포기 로드맵 제시’ 등 윤곽을 드러낸 북한의 ‘대범한 제안’을 미국이 긍정적으로 수용할 경우 이러한 원칙과 조건은 즉시 소멸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미국은 “북한이 먼저 핵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하지 않는 한 어떤 협상도 없다”고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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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미국은 북한의 핵 포기 선언이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베이징(北京)회담을 수용했다. 미국이 줄기차게 요구해온 다자회담이라는 회담 형식도 중국을 제3자로 참여시키긴 했지만 사실상의 양자회담이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은 베이징회담을 수용함으로써 북한의 ‘선 핵 포기’라는 회담 개최의 요구 사항을 사실상 포기한 것이다. 물론 미국은 베이징회담은 본회담이 아닌 예비적 회담이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설득력이 부족하다. 결국 미국은 회담을 해야 한다는 국내외의 압박에 굴복한 셈이다.

이수혁(李秀赫) 외교통상부 차관보는 18일 베이징회담 개최를 위한 미국 일본과의 사전 협의를 마친 뒤 선 핵 포기의 유효성 여부를 묻는 질문에 “베이징회담의 의미가 북한이 핵을 포기하게끔 하기 위한 것인 만큼 선 핵 포기냐 아니냐는 별로 의미가 없다. 미국도 선 핵 포기를 정부의 공식 입장으로 정한 것은 아닌 것 같다”고 답했다.

이 차관보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데 어떤 대가도 없다는 미국의 주장도 일단 협상이 시작되면 의미가 없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이 “북한의 핵 포기에 대한 대가는 없다고 하면서도 경제개혁을 위해 필요하다면 지원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일종의 말장난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내세우는 명분만 다르지 사실상 핵 포기에 대한 대가라는 설명이었다. 결국 미국은 북한의 주장을 들어보기 위해 회담에 참여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선 핵 포기라는 조건을 철회한 셈이다.

워싱턴=권순택특파원 maypo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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