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은 그간 여러 차례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고영구(高泳耉) 국정원장에 이어 서 교수까지 기조실장에 임명한 것은 국회의 권위를 무시한다는 비판을 감수하고서라도 야당과 본격적인 ‘이념전쟁’을 펼쳐 나가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한나라당은 일단 노 대통령의 서 실장 임명을 국회와 야당을 무시하는 ‘오기’로 규정하고 있다.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여야 합의로 고 원장과 서 실장의 임명에 대해 부정적 의견을 냈는데도 노 대통령이 이를 무시한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다.
노 대통령이 취임 후 국정연설과 영수회담 등을 통해 여러 차례에 걸쳐 국회 존중의 뜻을 강조했던 것도 한나라당이 공세를 강화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
한나라당이 이번 사태를 놓고 특히 분개하는 것은 청와대의 이중플레이 때문이다. 국정원장 인사청문회 후 청와대 고위관계자들은 이미 내정상태에 있던 서 실장에 대해 “내정한 바 없다” “야당의 강력한 반발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임명을) 강행할 수 있겠느냐”는 등의 말을 흘린 것에 대해 분개하고 있다. 청와대는 지난달 28일 외교통상부 업무보고 때 서 실장을 배석시킴으로써 사실상 이번 파문을 예고했지만 한나라당에서는 ‘설마’하는 분위기가 대세였다.
한나라당의 한 고위당직자는 “서 실장 인사 문제가 마지노선이라고 경고했던 것은 앞으로의 정국 운영에서 협상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는 메시지를 보냈던 것이다. 그러나 청와대가 이를 완전히 깔아뭉갰으니 강공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서동만 파문’이 참여정부의 불안한 정국운영 기조를 부각시켜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특히 이번 사태로 인해 신당 추진을 둘러싼 민주당내 신·구파간의 갈등이 더 커질 가능성도 있는 만큼 이이제이(以夷制夷)의 효과도 노릴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 안팎에선 이번 파문이 본격적인 색깔논쟁으로 비화되는 것에 대해 우려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한나라당이 이날 국회 본회의 법안 처리에 참여하고 단계적 투쟁을 예고한 것도 이러한 부담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은 이념논쟁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정부 핵심 요직에 진보적 인사들이 대거 포진한 데 따른 정국 운영의 불안감과 노 대통령의 ‘독선적 인사, 이중적 국회관’을 공격의 주요 포인트로 삼고 있다. 한나라당은 특히 이념적으로 불안한 사람들을 국정원 상층부에 임명함으로써 미국 등 우방 정보기관과의 고급 정보 교류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점을 부각시킨다는 방침이다. 국회 정보위원인 홍준표(洪準杓) 의원은 “노 대통령이 국회의 의견을 무시한 것도 문제지만 국가 차원에서 더 큰 문제는 미국이 국정원에 민감한 고급 정보를 주지 않는 상황이 생길지 모른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종훈기자 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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