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칼럼]안세영/盧-부시 코드를 맞춰보라

  • 입력 2003년 5월 1일 18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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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길이 곱지 않은 시댁을 방문하는 새 며느리를 맞는 기분입니다.” 대통령의 방미를 앞둔 요즘 미국의 한국인들 사이에 오가는 말이다. 열흘 후 미국 땅을 밟을 노무현 대통령은 화려한 환영행사 뒤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느낄 것이다. 새 정부와 반미기류에 대해 미국이 가진 불신 내지 배신감이다. 취임 후 나름의 변신과 이라크 파병 등으로 미국은 노 대통령 초기의 급진성향에 대한 우려를 희석시키긴 했다. 하지만 그들은 이번 기회에 노 대통령이 과연 민주적 가치를 공유한 ‘믿을 만한 지도자’인가 철저히 검증하려고 할 것이다. 따라서 이번 방미의 최대 목적은 원하건 원치 않건 미국에 각인된 불신을 신뢰로 전환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한미동맹과 투자유치에 물꼬를 틀 수 있다.

▼ 방미, 불신 해소 계기돼야 ▼

첫 단추는 조지 W 부시 대통령과의 개인적 신뢰형성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언뜻 보면 두 지도자는 전혀 다른 스타일로 보인다. 경상도 사투리의 달변과 어눌한 것 같지만 단호한 텍사스 화술, 진보와 신보수. 하지만 비슷한 점도 있다. 우리 대통령처럼 부시 대통령도 대중연설 중 곧잘 눈물을 보인다. 혹자는 노 대통령이 미국에 안 가본 것을 우려하지만 부시도 대통령이 되기 전 해외에 많이 나가지 않았다. 여기에 아버지와 텍사스에 대한 사랑이 각별한 부시 대통령에 대해 미리 공부해가면 의외로 첫 대면을 부드럽게 할 수도 있다. 나이를 올려 입대한 미 해군 최연소 파일럿으로 태평양에 추락한 전쟁영웅인 아버지 부시 이야기, 알라모 전투 후 9년간 독립국이었던 텍사스 역사에 대한 이해 등이다.

미국은 분명 ‘북핵 문제에 대해 한미공조냐 민족공조냐’를 물을 것이다. 이에 대해선 단호하고 명쾌하게 말해야 한다. 외교적 수사로 치장된 애매한 답변으로는 미국을 설득하기 어렵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노 대통령의 화려한 화술이다. 우리말로 하면 구수한 달변도 영어로 통역하면 상대에게는 뭔가 복선을 깐 지도자로 보일 수도 있다. 되도록 말을 아끼는 게 좋을 것 같다.

워싱턴 다음의 행보는 뉴욕에서의 투자 유치다. 지금쯤 관료들은 열심히 미 기업인에게 내놓을 투자 유인 보따리를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지에 가보면 이는 큰 도움이 안 된다는 걸 알게 된다. 워싱턴이 한국 정부를 ‘불신’한다면 뉴욕은 한반도를 ‘불안’해 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미국 투자자의 최대 관심은 한국 정부가 제공하는 투자 인센티브가 아니라 높은 투자리스크다. 이는 북핵 위협뿐만 아니라 언젠가부터 잡음이 나는 한미공조와 새 정부의 정책에 대한 불안 때문이다. 두산중공업, 철도민영화 후퇴 등은 미국 투자자의 눈에 ‘친노동-반기업적 정책’으로 보일 수도 있다. 이 같은 불신을 이번에 노 대통령이 해소하지 않으면 신규 투자는커녕 기존 투자자도 동요할 것이다.

인텔반도체 공장이 이번 투자유치의 뜨거운 감자다. 아마 지금 관료들은 인텔 건에 대해 뒷걸음질치고 싶을지 모른다. 100억달러 투자유치의 기치를 높이 띄웠다가 성과가 없으면 쏟아질 비난을 의식해서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관료적 발상이다. 역설적으로 투자유치 가능성이 낮더라도 대통령이 인텔에 대해 적극 나서는 것이 좋다. 이는 미 기업인에게 한국지도자의 투자유치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워싱턴 뚫어야 뉴욕도 풀려 ▼

마지막으로 성공적 방미 후 대통령이 직면할 것은 반미정서가 강한 지지세력의 반발일 것이다. 대외협상은 성공했는데 국내 집단의 반발을 사는 전형적 딜레마에 빠지는 것이다. 뒤늦게 미국 한번 갔다 오더니 많이 변했다는 비아냥이 나올지 모른다. 그러나 이에 대한 대답은 간단하다. 국민과 국익을 위해서라면 그 이상의 일이라도 하겠다는 대통령으로서의 사명감이다. 국내 인기에 집착했다가 전후 복구 참여를 위해 미국에 추파를 던지는 시라크 대통령의 낭패를 교훈 삼을 필요가 있다.

아름다운 5월, 태평양을 건너는 우리 대통령이 국민을 편안하게 해주는 성과를 가져오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안세영 객원 논설위원·서강대 교수 syahn@ccs.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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