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KBS사장 인선 개입 파문]대통령 '불간여'언급 무색

  • 입력 2003년 5월 2일 06시 40분


지명관(池明觀) KBS 이사장이 1일 KBS 사장 선임 때 청와대측이 “정연주씨를 민다”는 의사를 전달받았다고 밝힌 것은 대통령의 불간여 언급에도 불구하고 정권 핵심부의 방송에 대한 집착이 여전함을 보여준다.

청와대측은 코드가 일치하는 인사를 사장으로 선출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손’을 가동했으며 결국은 정씨가 사장으로 임명된 것이다.

지 이사장은 정씨를 미는 쪽이 지난번 서동구(徐東九) 전 사장을 민 쪽이라고 밝혔다. 서 전 사장은 노무현 대통령의 후원회장 출신으로 현재는 대통령문화특보로 활동하고 있는 이기명(李基明)씨가 추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 이사장은 정 사장과 막판까지 경합했던 류균(柳鈞) 전 KBS 정책기획센터장에 대해서도 청와대측의 또 다른 라인의 전화를 받았다고 밝혔다. 지 이사장은 “아마도 특정대학 라인인 것 같다”면서 “이로 미루어 청와대 내부에서조차 의견이 일치되지 않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지 이사장의 이 같은 언급은 KBS 사장 선임 과정에서 청와대 인사들의 입김이 치열하게 작용했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다. 이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3월 “앞으로 방송사에 전화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으며 방송사가 정권의 눈치를 살피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한 발언을 무색하게 하는 것이다.

물론 정 사장 선임에 대해 노 대통령이 개입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청와대 측근들은 특정 인사를 미는 식으로 영향력을 행사한 셈이다.

이 같은 과정을 통해 선출된 정 사장이 이끄는 KBS가 현 정권과 얼마나 ‘적절한 긴장’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느냐는 점이 문제의 핵심이다. KBS 내부에서는 “안 그래도 정 사장이 노 대통령을 연상시킨다는 평을 듣는데 이번에도 청와대측 개입 논란이 불거지면 공영방송의 이미지가 크게 훼손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특히 정 사장의 임기는 박권상(朴權相) 전 사장의 잔여 임기인 22일까지이고 현 KBS 이사진의 임기는 15일까지다. 이후 정 사장은 방송위원회가 새로 구성하는 KBS 이사회로부터 재신임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재신임 과정에서 ‘청와대측의 개입’이 논란을 불러올 가능성도 적지 않다.

한 방송학자는 “적어도 ‘KBS 인사’에 관한 한 참여정부가 전혀 ‘참여’스럽지 않다”며 “이사회가 주도한 사장후보 국민 추천 절차도 사실상 특정 인사를 미는 방식이라는 의혹을 감추기 어렵다”고 말했다.

허 엽기자 h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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