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신문은 그러면서 북한 죄수 수용소에 갇혔던 한 탈북 여성(28)의 체험기를 게재했다. 성이 이씨인 이 여성은 22세 때인 1997년 북-중 국경을 넘었다가 잡혔다고 한다. 다음은 체험기 요약.
“죄가 있다면 배고픔을 참지 못했다는 것밖에 없었다. 먹을 것을 찾아 국경을 넘었다가잡혀 수갑이 채워진 채 수용소로 끌려 왔다. 매일 탈진할 정도로 일을 해야 했다. 건설현장에서 맨발로 뛰면서 무거운 벽돌을 날랐다. 음식은 썩은 콩 낟알과 배추가 섞인 물 같은 엷은 죽 한 사발이 전부였다. 탈출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차츰 느낌이라는 게 모두 사라졌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게 됐다. 죽음에 대한 공포도 사라졌다. 아무 감정도 없는 기계가 돼버리는 그런 경지에 다다른 것이다.
수용소의 인권 상황은 공포 그 자체였다. 밤이면 여성 수감자(160여명)들은 고개를 앞으로 숙인 채 줄을 섰다. 그러면 감시원들이 일을 열심히 하지 않은 사람들의 머리를 채찍으로 때렸다. 벽에 머리를 찧기도 했다. 50명가량은 작은 방에 갇혔다. 그들은 누워서 자는 게 허용되지 않았다. 앉은 채 잠들었다가 다음날 깨어보면 옆 사람이 차갑게 굳어 있기도 했다. 특히 나이든 사람들은 금방 죽었다. 배고픔을 참지 못한 한 동료 수감자는 그렇게 죽은 시신의 귀를 물어뜯어 주머니에 넣었다. 나중에 먹기 위해서였다.
탈출하려던 두 자매가 잡히자 본보기 벌이 가해졌다. 자매는 무거운 통나무를 들고 있어야 했다. 견디다 못해 쓰러지자 다른 수감자들에게 자매의 손을 밟고 지나가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손뼈가 으스러질 때까지 밟고 지나가야 했다. 이어 자매는 벽에 묶였다. 아무런 음식도 제공되지 않았다. 며칠 후 자매의 시신이 실려 나가는 것을 봤다.”
세월이 흘러 너무 쇠약해진 이씨는 집에서 죽으라며 집으로 보내졌다. 그러나 이씨는 한 상인의 등에 업혀 강을 건너 중국으로 갔다. 4년을 숨어 지내다 ‘지하 철도’로 불리는 밀수품 운반 경로에 합류, 몽골을 거쳐 지난해 12월 한국에 들어왔다고 이씨는 말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인권운동가들은 현재 북한에 5곳의 대규모 수용소에 정치범 탈북자 등 20만명이 수감돼 있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기홍기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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