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한나라당 대치 "갈수록 꼬인다"

  • 입력 2003년 5월 4일 18시 55분


청와대의 고영구(高泳耉) 국가정보원장과 서동만(徐東晩) 국정원 기조실장의 임명 강행으로 촉발된 청와대와 야당간의 갈등이 장기화할 조짐이다.

특히 다음달 전당대회를 앞두고 있는 한나라당은 당권경쟁에 나선 서청원(徐淸源) 김덕룡(金德龍) 최병렬(崔秉烈) 강재섭(姜在涉) 의원 등 주요 후보들이 너도나도 ‘선명야당’의 기치를 내걸고 정권비판에 나서고 있어 다음달 17일(잠정) 전당대회 전까지는 청와대와의 대치상태가 계속될 수밖에 없을 듯하다.

▽한나라당=국정원 인사에 이어 정연주(鄭淵珠) KBS사장 인선, 국정원의 대북송금사건 개입 의혹, 나라종금 로비사건 ‘축소수사’ 문제 등을 앞세워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에 대한 직접적인 공세를 강화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또 ‘국정원 폐지 및 해외정보처 추진기획단’을 6일 출범시키고 국정원 폐지 관련 법안의 추진 방침을 공식화한 것도 당분간 압박의 고삐를 계속 조이겠다는 뜻이다.

이규택(李揆澤) 원내총무는 “노 대통령이 계속 야당을 무시하고 있는 게 문제다. 저쪽에서 먼저 성의를 보이지 않는다면 이대로 밀고 나갈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한나라당의 이 같은 강경자세는 구체화하고 있는 민주당 발(發) 신당논의에 제동을 걸 필요가 있다는 판단도 깔려 있다. 한나라당 안팎에선 신당 추진 배후에 ‘노심(盧心)’이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만큼 청와대를 상대로 분명한 대립각을 세워야 한다는 견해가 적지 않다.

박종희(朴鍾熙) 대변인이 4일 “신당론의 배후가 노 대통령이라는 게 TV토론에서 확인됐다. 대통령은 신당작업에서 손을 떼라”고 공격한 것도 ‘신당=노무현당’이라는 인식을 확산시켜 ‘신당 바람’을 사전에 차단하고 당 내부결속을 강화하겠다는 의도인 셈이다.

한 당직자는 “노 대통령의 측근 안희정(安熙正) 민주당 국가전략연구소 부소장에 대한 검찰 수사 결과도 축소수사 의혹이 제기될 경우 특검으로 갈 것이다”고 강조했다.

▽청와대=당분간 한나라당과의 냉각기가 불가피하다는 판단아래 상황을 관망하는 자세다. 국정원 개혁 문제는 물러설 수 없는 사안인 데다 국정원 인사 문제에 관한 한나라당의 시각은 과거의 ‘냉전적인 잣대’인 만큼 수용할 수 없다는 게 청와대의 입장이다. 따라서 이 문제로 야당과 대화를 나눌 생각은 없다는 것이다.

유인태(柳寅泰)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은 “국정원 문제는 우리 쪽에서 더 이상 뭐라고 할 게 없다. 서 실장 건만 해도 청문회 대상도 아닌 데 한나라당이 너무 심하게 나왔기 때문에 국민의 공감을 얻지 못할 것이다”면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뭔가 접합점이 생기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청와대는 노 대통령이 미국 방문을 마치고 난 뒤 방미활동 결과를 설명하는 자리를 통해 자연스럽게 야당과의 대화를 재개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종훈기자 taylor55@donga.com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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