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방형남/ 盧-부시 어깨동무를 기다리며

  • 입력 2003년 5월 6일 18시 29분


노무현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이 운명처럼 다가오고 있다. 일주일 뒤에 열릴 회담의 결과에 따라 북한 핵 문제와 주한미군의 장래가 결정된다. 50주년을 맞은 한미동맹의 미래도 이번 회담에 달려 있다. “사진 찍기 위해 미국에 가지는 않겠다”던 후보 시절 노 대통령의 발언은 이토록 중요한 첫 미국 방문을 예고한 예언이었던가.

의제가 무겁기도 하지만 2년 전의 씁쓸한 기억 때문에 국민의 마음은 더욱 조마조마하다. 2001년 3월 김대중 당시 대통령은 권좌에서 3년을 보낸, 경험 많고 노회한 정치인으로서 첫 남북정상회담을 실현시키고 노벨평화상을 받은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인물이라는 우월감까지 느끼며 부시 대통령을 만났다. 상대는 취임 한 달을 겨우 넘긴 초보 대통령이었다. 그러나 “김정일에 대해 회의적”이라는 부시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김 대통령의 모든 수고는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2년이 지난 지금 부시 대통령은 산전수전 다 겪은 인물로 변신했다. 9·11테러로 인한 위기를 이겨냈고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을 몰아냈으며 이라크전에서도 승리했다. 반면 노 대통령은 취임 두 달을 넘긴 신참에 불과하다. 얄궂게도 2년 전과는 정반대 상황이 됐다. 그래서 노 대통령의 철저한 준비와 비상한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김-부시 회담의 의제는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부는 막 출범한 공화당 정부의 의중을 탐색하는 회담 정도로 생각했다가 낭패를 보았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특별한 현안이 없던 2년 전의 실패는 그럭저럭 견딜 수 있었지만 이번 회담이 실패로 끝나면 그 파장은 감당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노 대통령은 과연 무슨 전략으로 이번 회담에 임할 것인가. 그는 지난달 청남대에서 국민에게 보낸 ‘호시우행(虎視牛行) 편지’에서 “저는 지금 누구도 미워하지 않습니다. 대통령이란 자리는 누구를 미워하는 자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라고 고백했다. 고요한 새벽 한 줄 한 줄 글을 쓰면서 그는 진심을 담았을 것이다. TV토론을 하다 자극적인 질문에 발끈해서 토해낸 “대통령 대접해 준 적 있습니까”라는 말이 그의 진심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국민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의 정책과 인사(人事)를 비판하는 국민이 있다. 평소에 그를 미워하는 국민도 있다. 그래도 중요한 회담에서 대통령이 잘해주기를 바라는 것이 대다수 국민의 마음이다. 기독교에 중보기도라는 게 있다. 한 사람이 모든 교인을 대신해 하는 기도를 말한다. 누군가 나를 위해 기도한다. 어머니가, 아내가, 목사님이, 동료 교인이 나를 위해서 기도한다는 생각을 하면 얼마나 마음이 따뜻하고 든든한지 모른다. 그분들의 정성을 생각하면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게 되고 몸가짐 또한 조심하게 된다.

많은 국민이 중보기도 하듯이 대통령의 성공을 기원하고 있다. 월드컵에서 경험하지 않았는가. 한마음이 된 국민의 응원 덕분에 우리 대표팀은 실력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다. 국민의 성원이 바로 노 대통령의 힘이다. 노-부시 회담이 어깨동무로 끝나 모든 현안의 좋은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두 사람은 1946년 여름 앞서거니 뒤서거니 태어난 동갑내기가 아닌가.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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