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반적인 한국 경제와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집권 이후 한국 경제 변화를 어떻게 평가하나.
“한국은 지난 40년간 연 평균 6% 이상의 고도성장을 이룩한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다. 우수한 인력, 시장중심 경제, 합리적 정부정책, 대외 지향 등의 요인이 경제활동을 효율적으로 하기에 좋은 토양으로 작용했다. 소득분배 또한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아주 공평하게 이뤄져 왔다. 최근 한국의 변화와 관련해서는 긍정적인 평가와 부정적인 평가를 동시에 할 수 있다. 외환위기 이후 경제활동과 기업지배구조의 투명성을 높이고 있는 것은 바람직하다. 반면 사회복지 부문을 강화하는 등 소득 불균형을 시정하는 쪽으로 정책의 우선순위를 두는 것은 위험하다.”
―한국은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 비해 사회안전망이 덜 갖춰져 있는 편이다. 전체 국가예산에서 복지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도 상대적으로 낮다. 그런데도 사회복지 등 소득분배 문제에 신경을 쓰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인가.
“소득분배를 강조하거나 노조의 목소리를 키우고 옹호하는 방향으로 정부정책의 가닥을 잡으면 경제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 더구나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빈부의 소득격차가 덜한 편이다. 소득세를 낮추는 등 비즈니스 환경을 개선하는 쪽으로 정부정책을 잡고 이를 통해 확보한 부를 가진 자와 덜 가진 자가 공유하도록 하는 것이 정책의 올바른 방향이다. 서유럽 국가들이 사회복지 부문을 중요시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정도가 지나쳐서 경제성장에 어려움을 끼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 20년간 북유럽 국가들과 독일의 성장속도가 부진하지 않은가. 그러한 국가들의 예를 한국이 좇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미국경제를 비롯한 세계경제가 2.5%대 이하의 성장을 하고 있다. 앞으로 세계경제는 어떻게 돌아갈 것으로 보는가.
“한국의 경제성장에서 수출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특히 정보기술(IT) 부문의 수출이 그러하다. 그 점에서 세계경제와 한국경제의 연관성이 강하다. 어렵다고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최근 세계경제 상황을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 2000년 이래 소위 신기술 산업 붐이 꺾인 게 사실이다. 하지만 90년대 미국의 신경제가 버블이었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신기술에 대한 시장의 평가 방법이 달라졌다고 생각한다. 2000년까지 신기술 산업을 과대평가했다면 2000년 이후 ‘시장’은 신기술 산업을 상당히 조심스럽게 평가한다고 할 수 있다. 이 밖에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일시적인 현상인지, 상당 기간 지속될 문제인지 아직은 판단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이라크전쟁 종식을 계기로 ‘테러리즘’이라고 하는 세계경제의 리스크가 상당부분 제거됐고 중동지역에 대한 불안 요인도 걷히고 있다. 이런 점들은 최근 주가상승을 통해 긍정적으로 반영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국경제는 북한 핵문제 등 대외적 요인이 악화됨으로써 경기침체가 심각해지는 등 고전하고 있다. 성장 3대 요인 중 수출은 아직 호조이지만 투자나 국내소비가 부진하다. 이 때문에 최근 들어 적자재정과 금리인하를 검토하고 있다. 잠재성장률 달성을 위한 정부의 대책에는 무엇이 있을 수 있나.
“정부재정이란 전체 국가부채를 감당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유연해야 한다. 경기상승 시기에는 흑자재정을 유지하고 경기하강 시기에는 적자재정을 편성하는 미국의 경험이 한국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금리정책은 다르다. 미국 등에 비해 한국의 이자율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상대적으로 강력한 인플레 압력이 있지 않은가. 경기가 어렵다고 해서 금리정책을 동원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한국정부와 한국은행은 최근 들어 금리인하에 따른 인플레 압력은 없다고 하는데….
“기본적으로 금리정책은 가격안정을 꾀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 경기부양을 위해 금리정책을 동원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정부가 분기별 경제성장률에 집착하기보다는 중장기적으로 재정과 통화정책을 고려해야 한다. 또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남북한 통일이 결국 이뤄지지 않겠는가. 그때가 되면 필요한 재정, 남북한간의 빈부 격차 문제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고민하며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남북통일에 대한 대비는 한국경제가 직면할 최대의 도전이 될 것이다.”
―기업의 투자가 부진하다. 투자촉진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하나.
“한국은 줄곧 높은 성장을 해왔고 저축률과 투자율이 대단히 높았던 나라이다. 최근 들어 성장률과 투자율이 낮아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앞으로 경제성장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방증이 아닌가? 사유재산권을 강력히 보호하고, 법에 의한 사회지배, 세계경제와의 연관성 강화, 소득세를 감면하는 등 역동적인 경제활동이 가능하도록 환경을 조성해 주어야 한다. 여기에 도움이 되는 경제정책, 재정정책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경제성장 요인뿐 아니라 경제성장과 민주주의 발달 사이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도 많은 연구를 한 것으로 안다. ‘경제가 성장하면 민주주의가 발달한다’고 한 이른바 ‘립셋(Lipset)의 가설’이 한국에도 적용되는가.
“그렇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더욱 진전되면서 경제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민주주의 제도가 발달하면 이익단체나 노조 등의 발언권이 강해지고 이에 따라 소득분배 문제가 강하게 대두된다. 이것은 경제성장을 제약하는 요인이 된다.”
―노조의 목소리도 강해지지만 정부의 규제정책이 피규제자인 기업에 의해 ‘포획’(捕獲·규제당국이 피규제자의 이익에 사로잡힌다는 뜻)되기도 하지 않는가.
“그렇다. 특정 경제 부문의 영향력이 강화되면서 전체 부의 증대에 기여하기보다는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기 위한 로비가 강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반독점규제법(공정거래법)이 잘못됐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아는데….
“본래 반독점법은 주(州)간, 또 다른 나라와의 상업 및 거래의 제약 요인을 막기 위한 데에 목적이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기업뿐 아니라 노조에도 이 법이 적용되었는데 이후 수정을 통해 노조간 연대(連帶)에는 적용되지 않게 됐다. 바로 이 점이 불평등하다. 또 산업별로 과잉 투자가 이뤄졌을 때 이를 해소하는 좋은 방법은 기업간 합병인데도 그러한 합병이 반독점법에 의해 여러 차례 거부되고 있다. 특히 IT산업이 그렇다. 유럽연합(EU)이 MCI와 스프린트의 합병을 허용하지 않은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인터뷰=김용기기자 ykim@donga.com
▼로버트 배로 교수는…▼
로버트 배로 교수는 해마다 노벨경제학상 ‘0순위 후보자’로 거명되는 세계 정상급 경제학자이다. 자유주의 경제학파의 거두(巨頭)인 배로 교수는 미국을 비롯한 각국의 재정 및 통화정책에 대해 조언하고 있다.
합리적 기대이론의 기틀을 마련해 현실경제에 적용함으로써 거시경제이론의 발전에 기여한 그는 상아탑에 머물지 않고 이론이 현실에서 어떻게 실현되는지를 열정적으로 연구해온 학자로 평가받는다. 1970년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시카고대, 로체스터대, 하버드대 강단에 서면서도 후버연구소, 브루킹스연구소의 연구위원으로 활동했고 영란은행 자문위원을 맡기도 했다. 글솜씨도 뛰어나 1991년 이래 월스트리트저널과 비즈니스 위크의 고정 칼럼니스트로 활약하면서 고정 독자를 확보하고 있다.
한국과의 인연도 깊다. 오래 전부터 한국의 금리, 한국의 민주주의와 경제발전 등을 연구했고 외환위기 직전 포스코연구소 초청 연구위원으로 활동했다.
6일부터 3주간 서울대에서 진행 중인 9차례에 걸친 강의료로 5만달러(약 6000만원)를 받아 화제를 일으킨 배로 교수는 겸손하고 약간은 내성적인 것으로 보였다. 기자의 비판적 질문에도 ‘흥미로운 시각이다’며 웃음을 잃지 않고 열성적으로 답변하는 성실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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