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산은 총재였던 이근영(李瑾榮·구속 수감) 전 금융감독위원장은 28일 서울지법에서 열린 구속적부심에서 "2000년 6월5일 김충식(金忠植) 전 현대상선 사장이 대출을 신청하러 왔을 때 '정부에서 가보라고 해서 왔다. 청와대에서 연락받았다'고 말했다"고 진술했다.
이는 산은의 4000억원 대출이 정권핵심인 청와대의 지시에 의해 이뤄졌음을 밝힌 것으로, 대북송금이 남북 정상회담의 대가였는 지를 판단하는 중요한 근거가 될 전망이다.
앞서 이 전 금감위원장은 23일 영장실질심사에서도 "2000년 6월3일 시내 모처에서 열린 비공식 조찬간담회에서 이기호(李起浩)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이 '현대가 부도나면 햇볕정책에 지장이 있고 남북경협도 어려워진다'며 대출을 당부했고, 회의 직후 한광옥(韓光玉) 대통령비서실장이 전화를 걸어와 '현대를 도와달라'고 말했다"고 진술한 바 있다.
이와 관련, 송두환(宋斗煥) 특별검사팀은 이기호 전 수석을 이날 오전 소환, 조사했다.
특검팀은 이 전 수석을 상대로 2000년 6월 대출 당시 비공식 조찬간담회와 전화통화를 통해 이근영 당시 산은총재에게 대출을 요청한 경위와 대출금이 '대북 송금' 자금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는지 여부 등을 집중 조사했다.
이 전 수석은 이날 특검조사에서 "당시 대출은 현대의 유동성위기를 고려한 정책 판단이었을 뿐 대출금이 대북 송금 자금으로 사용될 줄은 전혀 몰랐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검팀은 이 전 수석이 산은 대출에 부당하게 개입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이 전 수석에 대해 직권남용 등 혐의를 적용, 형사처벌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
특검팀은 또 당시 대출 실무를 총괄한 박상배(朴相培) 전 산은 부총재를 이날 다시 소환, 대출 경위와 산은이 회사채신속인수제도를 통해 현대 계열사에 거액을 지원한 배경을 조사했다.
길진균기자 l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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