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유재천/'닫힌 언론관' 언제까지

  • 입력 2003년 6월 3일 18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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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 출범 100일을 맞아 노무현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통해 우리는 지금 모든 분야에서 한 시대를 마감하고 새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관행과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고 말하면서 그 요체의 하나로 권력과 언론의 합리적 관계의 설정을 들었다. 그러면서 언론과 권력은 ‘상호 긴장’과 ‘감시’라는 정상화를 향한 새로운 관계 형성에 들어섰다고 평가했다. 청와대 또한 ‘참여정부 출범 100일’ 성과의 하나로 합리적 정도적(正道的) 언론관계 확립을 꼽았다.

▼변화된 지위에 걸맞는 역할해야 ▼

물론 권언유착을 단절하고 정부와 언론간에 적절한 긴장관계를 유지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는 높이 평가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참여정부 출범 이후 지금까지의 언론정책은 그러한 목표를 추구함에 있어 본질을 떠나 지엽적인 것에 집착하면서 갈등만 증폭시켜 왔다. 그렇게 된 까닭은 정부와 언론간에 합리적 관계를 설정하겠다는 동기가 다분히 정략적인 데서 출발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은 재야 시절부터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까지 이른바 동아 조선 중앙 등 메이저신문들에 의해 본 피해의식 때문에 이들 신문에 대해 적대적 태도를 견지해 왔다. 이 같은 태도는 그의 지지 세력에 의해 더 보강되고 대통령은 그들의 집단압력에서 자유롭지 못한 처지가 되고 말았다. 이런 까닭에 참여정부는 출범 초기에 중요한 국정현안이 산적해 있는데도 무엇보다 먼저 취재 시스템을 개편하는 일을 서둘렀다.

메이저신문들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려는 의도로 조급히 취재 시스템을 개편한 결과 기자실 개방, 기자단 해체, 브리핑제도의 도입 등 긍정적 조치마저 준비가 안 된 채 시행함으로써 혼선을 야기했고, 근무 중 사무실 방문취재 금지, 공무원의 기자 접촉 사후보고, 취재원 실명제 등 취재의 자유를 제한하는 조치로 인해 언론자유의 침해라는 비판을 자초했다.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신문 공동배달제만 해도 그렇다. 신문 공동배달제가 신문산업을 위해 긍정적인 기능은 무엇이며 역기능은 어떠할 것인지를 충분히 토론한 다음에 권장 여부를 결정해야 마땅한데도, 토론을 새로운 관행과 문화로 내세우는 정부가 그런 과정은 생략한 채 서둘러 도입을 재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를 통해 메이저신문들의 시장점유율을 낮추려는 동기가 앞선 것이라면 공동배달제는 실패할 것이 자명하다. 공정거래는 공정거래법의 적용으로 충분하며 공동배달제로 시장점유율에 지각변동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시장은 신문의 질이 결정하지 인위적인 조치로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이런저런 정부의 언론정책으로 미루어 볼 때 참여정부는 폐쇄적 언론관을 지니고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우호적 언론매체와 적대적 언론매체로 편가르기를 하는 것이 그 단적인 표현이다.

그렇다면 왜 참여정부는 폐쇄적인 언론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여러 까닭이 있겠지만, 핵심은 대통령을 비롯한 참여정부의 일부 각료들이 변화된 지위에 상응하는 역할이 무엇인지를 숙지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들은 재야 시절에 수행하던 역할을 떠나 국정 담당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배역이 달라져도 예전의 배역 노릇만 하고 있다면 제대로 된 배우가 될 수 없음은 당연하다. 따라서 노 대통령을 비롯한 참여정부의 참모들이나 각료들은 국민 전체를 포용하는 열린 마음으로 역할 변화를 꾀해야만 한다. 적대적 언론을 구분해 불이익을 주려는 편협한 마음에서 벗어나 열린 언론관을 가져야 합리적 권언관계가 정착될 수 있다.

▼신중하지 못한 언행 혼선 불러 ▼

‘말’만 해도 그렇다. 대통령을 비롯한 참모와 각료들은 그 직위에 맞는 언행을 해야 한다. 말은 인품의 표현이다. 품격 있는 언행이야말로 존경을 불러온다. ‘막말’로만 소탈하고 정직한 성품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품격 있는 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신중한 언행이다. 대통령의 말로 인해 초래되었던 혼선을 생각해 보자. 국정 최고책임자의 즉흥적 발언은 금기사항이다.

유재천 한림대 교수·언론정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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