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토론은 경제에 대한 한국사회의 시각이 얼마나 감성적 차원에 머물러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국정(國政)의 최고책임자 후보들을 앞에 놓고 각계 전문가가 모여 준비했다는 질문 수준이 그 정도였다. 우리 경제가 지불해야 할 코스트(비용)가 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년이 흘렀다. 불길한 예감은 현실로 다가왔다. 예상을 뛰어넘는 심각한 경기침체가 이어지고 있다. 시장경제의 핵심인 자유와 활력 대신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불투명성이 팽배한 것은 더 무섭다.
이제 한 번쯤 근본적 물음을 던질 때가 됐다. 한국경제가 왜 이처럼 자신감을 잃고 비틀거리고 있는가.
시대에 뒤떨어진 이념 집착이 문제의 출발점인 것 같다. 흔히 말하는 개혁이나 진보가 지금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진정한 개혁이고 진보인지 검증할 필요가 있다.
1980년대 서울대에는 ‘한국경제론’이란 과목이 개설돼 있었다. 인간적 존경도 받았던 분배경제학의 대부(代父) 변형윤(邊衡尹) 교수가 담당교수였다. 민중주의 성향의 소장 경제학자가 번갈아가며 수업을 맡았다. 당시 유행했던 좌파적 시각에서 한국경제를 해석한 강의가 많았다. 세월이 흘러 ‘초청강사’ 중 상당수는 청와대나 내각 등의 고위직으로 진출했다.
암울한 시대에 민주화를 위한 그들의 기여를 평가한다. 당시 상황에서 그런 ‘세상읽기’가 지닌 의미도 인정한다. 그러나 지금 문제해결에 그 인식이 유효한가라는 것은 다른 차원이다.
지난 20여년간 세계 각국의 경험은 민중주의적-반(反)기업적 경제관에 따른 정부운영이 어떤 파탄을 초래하는지를 일깨워줬다. ‘파이’를 키우기보다 나눠 갖는 것에만 초점이 모아질 때 분배할 파이 자체가 줄어든다는 점도 분명해졌다.
‘어두운 열정’은 한 사회를 뒤흔들 수는 있지만 발전의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다. ‘차가운 머리’가 뒷받침되지 않는 ‘따뜻한 가슴’만으로는 부족하다. 비난과 단죄로 모든 난제가 해결되면 좋겠지만 세상에 만병통치약은 없다.
대기업 지배구조 문제도 그렇다. 이 사안은 한국 경제발전의 역사적 경험과 맞물려 있는 딜레마다. 일부 경제장관은 “한국기업 소유권이 외국인에게 다 넘어간다고 무슨 문제가 있느냐”는 식으로 주장한다.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면 빨리 장관직을 내놓는 것이 좋다. 오해를 무릅쓰고 말하면 글로벌경제시대에도 여전히 경제에 국경은 있다.
이 시대에 요구되는 경제개혁의 핵심은 정치 및 행정권력의 간섭과 규제 확대가 아니다. 민간에 대한 쓸데없는 참견과 ‘겁주기’를 줄여 생산과 투자를 촉진하고 삶의 수준과 질을 높이는 것이 더 시급하다. 기업이 정권과 유착해 수익성 없는 곳에 거액을 쏟아 붓고 국민세금에 손을 벌리는 구시대적 행태부터 없애야 한다. 이런 바탕 위에서 ‘기업개혁’을 유도하는 것이 경제정책의 우선순위 상 맞지 않을까.
권순활 경제부차장 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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