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의 성이 심씨와 신씨이고, 경기 동두천시 조양중학교 2학년생이었다는 사실까지는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미군 장갑차에 치여 14세의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난 일은 우리 가슴에서 지우기 어려운 아픔으로 남아 있다.
그러면 윤영하 대위, 한상국 중사, 조천형 황도현 서후원 하사를 기억하는 국민은 얼마나 될까.
이들은 지난해 6월29일 서해교전에서 숨진 해군 장병들이다. 윤 대위는 지난해 월드컵 기간에 한 TV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서해를 지키는 해군을 대표해 태극전사들의 선전을 기원한 적이 있다. 나는 당시 환한 표정으로 ‘파이팅’을 외치던 그가 며칠 뒤 산화했다는 비보를 듣고 애통함을 금할 수 없었다.
그 후 1년이 지난 지금 조국의 영해를 수호하다 장렬히 전사한 이들은 미선이 효순이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잊혀져 버린 존재가 된 듯하다.
얼마 전 사석에서 만난 안보 분야의 한 고위당국자는 “지난달 노무현 대통령을 수행해 미국에 갔을 때 미국인들로부터 서해교전에서 사망한 장병의 이름을 아느냐는 질문을 받고 당황했었다”며 “내가 이런데 일반인들이야 오죽하겠느냐”고 부끄러워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워싱턴특파원 시절이던 지난해 12월 한국의 대통령선거에 관한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 대담을 진행하던 때의 일이 떠올랐다. 한 참석자가 갑자기 한국의 반미감정을 문제 삼는 바람에 애를 먹었기 때문이다.
주한미군 출신인 그는 “왜 한국인들은 북한이 의도적으로 저지른 서해교전에 관해선 북한에 항의하거나 북한 인공기를 찢는 시위는 하지 않으면서 미군의 우발적인 사고만 문제 삼아 성조기를 불태우고 찢느냐”고 따졌다.
여중생 사망사건이 일어난 뒤 미국에선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부 장관, 토머스 허버드 주한 미대사, 리언 러포트 주한미군 사령관 등이 나서서 유감을 표명하거나 사과했다. 만일 한국에서 미국인이 비슷한 사고를 당하면 한국 정부와 한국인도 그렇게 해 줄 것이냐는 물음엔 선뜻 좋은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여중생 추모 촛불행사만 해도 한국의 시민단체가 이를 시작한 것은 사십구일이 되던 지난해 7월31일이었다. 그러나 미2사단은 이보다 앞서 6월18일에 추모 촛불행사를 가졌지만 이 사실은 알려져 있지 않다.
최근 정부는 13일로 예정된 여중생 사망 1주년 추모행사가 행여나 대규모 반미시위로 변질되지 않을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미간 이견을 겨우 봉합해 놨는데, 또다시 반미시위가 벌어질 경우 한미관계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걱정에서다. 강원용 목사 등 각계 원로들이 6일 고건 국무총리와 만났을 때 여중생 추모행사의 순수성이 왜곡되지 않을까 우려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아마도 우리가 서해교전에 대한 북한의 책임을 끝까지 추궁하지 않은 것은 돌발적인 장애물이 나타나더라도 남북간의 화해와 협력을 밀고나가야 한다는 현실적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 핵위기가 고조되는 상황에서 바람직한 한미관계를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 역시 매우 현실적인 문제다.
한기흥 정치부 차장 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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