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이우일/‘이공계 살리기’ 이공계만 바빠서야

  • 입력 2003년 6월 13일 18시 15분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청년실업률이 높아지고 있다. 노무현 정부가 젊은 세대의 기대와 지지를 바탕으로 출범한 만큼 경제 불황의 직격탄을 맞은 젊은이들의 실망도 클 것이다. 그러나 ‘가난은 임금도 어쩔 수 없다’는 말이 있듯이, 먹구름이 낀 경제 상황이 정부 정책만으로 해결될 수는 없다. 최근의 경제적 어려움은 대외적 원인도 있으나 결국은 우리의 산업경쟁력을 강화시킴으로써 스스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기술은 곧 인력이므로 산업경쟁력은 경쟁력 있는 산업기술 인력에서 비롯된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대학은 국가경제 운영의 필수요소인 인력을 양성하는 책무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이공계 인력 양성의 효율화와 선진화를 위한 대책 수립과 수행에 정부 이상으로 능동적 역할을 자임하며 나서야 한다. 현재 이공계 지원자가 줄어드는 대학 입시지원 현황을 보면 앞으로 5∼10년 이내에 과학기술 인력의 공급이 심각한 상황에 빠질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청소년 이공계 진출 촉진 방안으로 이공계 인력의 공직 비율 확대, 병역 특례, 각종 장학제도 등을 마련하고 있지만 그 효과가 나타나려면 상당한 시일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공계 지원자가 줄어드는 원인에 대해서는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당시 구조조정에서 많은 이공계 인력이 산업현장에서 퇴출되면서 이공계의 장래가 없다고 생각됐기 때문이라거나, 지난 정부에서의 기술벤처 창업 시도들이 거품만 남기고 사라졌기 때문이라는 등 구구한 설만 있다. 정부 역시 정확한 원인 분석과 그에 따른 근본적 대책 수립보다는 단기적 대책 마련에 머리를 싸매고 있다. 그리고 대학은 속수무책으로 정부만 바라보고 있는 형국이다.

이 문제에 대한 의견 수렴을 위한 공청회나 간담회가 종종 열리고 있으나 원로 과학자나 대기업의 연구관련 부서장, 그리고 정부의 과학기술 담당자만 참석해 대안을 모색하는 경우가 많다. 또 초청 인사들도 과학기술인이 대부분이어서 토론회는 과학기술인들끼리 울분을 토로하고 서로 위로하는 자리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자리를 장래 국가경제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기회로 만들기 위해서는 사회학 경제학 심리학 행정학 등 보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의 참석은 물론이고 일반 국민의 적극적 관심도 필요하다.

국회의원들을 초청해 토론에 참여시키거나 시민단체 중에서 뜻을 같이하는 단체를 초청해 ‘경제를 살릴 길은 기술개발뿐’이라는 인식을 확산시켜 나가야 한다. 정책 담당자들은 이런 의견들을 새겨들은 뒤 이를 제도화하는 데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대학 역시 이공계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교육과정을 혁신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청와대에 정보과학기술보좌관직을 신설해 각 부서의 기술개발 정책을 조율토록 하면서 과학기술 진흥에 대한 의지가 크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그 연장선상에서 청소년들의 이공계 기피현상에 대해서도 획기적인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이 현상을 기술관련 부처들만의 고민거리가 아니라 국가의 명운이 걸린 중대한 문제로 인식하고 국민의 지지를 받는 현실적인 이공계 인력 육성책을 내놓기를 기대해 본다.

이우일서울대 교수·기계공학·대학산업기술지원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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