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비밀송금 특검 수사가 점차 ‘몸통’으로 향해가면서 여권 핵심부가 잇따라 ‘DJ 엄호’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문재인(文在寅)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은 15일 “대북송금 특검법 공포는 국내 자금조성 부분의 불법성 여부 조사가 필요하다고 해서 한 것”이라며 “남북 신뢰관계에 손상을 줄 수 있는 대북송금 부분에 대한 사법적 조사와 처리는 바람직하지 않고, 만약 그런 게 있다면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문희상(文喜相) 대통령비서실장이 “DJ에 대한 조사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고, 민주당 정대철(鄭大哲) 대표도 DJ조사 반대를 언급했다.
특히 ‘특검 불가피론’을 개진했던 민주당 주류측 의원들 사이에서도 “특검이 과잉 수사를 하고 있다” “특검 수사를 조속히 매듭짓자”는 의견이 확산되고 있다.
이 같은 ‘특검 수사 제한론’에 대해 청와대측은 정치권이 특검법 개정 약속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문 수석은 “대북송금 부분은 고도의 정치행위이자, 외교행위로 남북관계의 신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여야가 특검법을 개정한다는 전제 아래 대통령이 법을 수용했으나 정치권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특검법 수용 과정을 볼 때 청와대측의 이 같은 주장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민주당에서 나온다. 한 관계자는 “청와대는 특검법 수용 당시 여야가 개정에 확실하게 합의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면서 “그런데도 노 대통령이 이를 수용한 것은 영남권 공략을 의식했기 때문이라는 게 일반론이었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의 다른 관계자는 “청와대가 뒤늦게 DJ조사 반대 등을 말하는 것은 신당 문제를 놓고 탈호남, 탈DJ 논란이 불거지면서 호남 민심 이반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데다, 햇볕정책 지지 세력들의 분열 양상마저 나타나는 현실을 인식했기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 같은 정치적 민감성 때문에 여권 내에서조차 특검 수용을 둘러싸고 책임 공방이 일어나고 있다. 비주류인 정균환(鄭均桓) 원내총무는 “한나라당과 특검, 현 정부가 남북관계 사법테러의 주모자들”이라며 현 정권의 책임까지 추궁하고 있으나 주류측은 “원내 사령탑이 대책을 잘못 세워놓고 무슨 소리냐”고 반박하고 있다.
한편 정대철 대표는 이번 주 초 노 대통령을 만나 25일로 1차 만료되는 특검 수사 기간의 연장에 반대하는 당론을 전달할 계획이어서 청와대의 대응이 주목된다.
정용관기자 yongari@donga.com
▼한나라 "특검 방해 언동 중단하라"▼
한나라당은 특검 수사 문제에 대해선 다소 느긋한 입장이다.
여권의 잇따른 특검 비난 발언이 ‘사법권 침해’로 비치고 있는데다 ‘대북송금이 북한의 핵개발에 사용됐을지 모른다’는 국민적 의구심이 남아 있는 한 한나라당의 공세가 명분에서 앞선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박종희(朴鍾熙) 대변인이 연일 “노무현 정부는 대북뒷거래의 진상을 밝히고 있는 특검 활동을 방해하는 일체의 언동을 즉각 중단해야 마땅하다”고 포문을 여는 것도 ‘여론은 우리 편’이라는 자신감과 무관치 않다.
다만 정치적으로 민감한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 사법처리 여부에 대해선 ‘사법부의 판단몫’이라며 가급적 언급을 자제하고 있다. 굳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한나라당은 그러면서도 특검이 ‘좌초’하는 사태는 묵과하지 않겠다며 압박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홍준표(洪準杓) 의원은 “현대는 북한에 5억달러를 보낸 대가로 김대중 정부로부터 300억달러에 달하는 공적자금을 받아냈고, 이 가운데 200억달러가 회수불능상태가 됐다”며 “특검이 무산되면 현대와 김대중 정부의 부패커넥션에 대한 특검을 추진할 것이며 그렇게 될 경우 노무현 정권도 좀 복잡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