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가장 궁금한 것이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의 대북 송금 사건 개입 정도. 정상회담 협상과 대북 송금 결정 및 실행 과정 전반을 김 전 대통령이 언제 알았고, 어떻게 관련이 돼있는지에 대해서도 특검팀은 명확한 ‘답’을 내놓지 않았다.
김 전 대통령이 대북 송금 사실을 인지했다는 것을 확인했지만 ‘위법행위’에 개입한 정황은 파악하지 못했다는 게 특검팀의 설명이다.
다만 이날 공개된 박지원(朴智元) 전 문화관광부 장관의 공소장에 박 전 장관이 2000년 4월 8일 북한측과 4억5000만달러 송금을 약정할 때 ‘대통령특사’ 자격이었다고 표현되어 있어 대통령과의 보고관계를 나타내고 있다.
실제 김 전 대통령은 박 전 장관을 통해 북한과의 정상회담 예비 접촉 과정을 상세히 보고받았고, 현대의 4000억원 대출과 송금은 당시 정부 고위 관계자들의 주도로 이루어졌다.
만약 특검 수사기간이 연장되고 특검이 이 부분에 대해 수사를 벌인다면 김 전 대통령이 직권남용의 공동정범으로 인정될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짐작을 할 수 있는 대목이다.
또 ‘남북정상회담+현대 경협 사업’의 대가로 건네진 5억달러라는 금액이 어떤 경위로 정해졌는지 드러나지 않았다.
누가 먼저 송금을 제의했는지, 어떤 논의 과정을 통해 현대의 사업 대가로 4억달러, 정상회담 대가로 1억달러를 지급하기로 정했는지가 밝혀지지 않은 것.
이와 관련해 경제계의 한 관계자가 “북한이 10억달러를 먼저 요구했으나 정부와 현대가 협상을 통해 액수를 줄여 5억달러로 최종 결정됐다”고 주장한 내용이 일부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대북 7대 경제협력사업권에 대해 2000년 8월 북한과 최종 합의한 현대가 이보다 두 달이나 앞선 6월에 서둘러 돈을 보낸 이유도 석연치 않다. 특검팀은 정상회담 개최에 최종 합의한 시점(4월 8일)에 현대는 ‘포괄적’으로 대북 경협 사업권을 얻는 대가로 돈을 주기로 했고, 5월3일 북한과 경협 사업에 대해 잠정합의를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최종 합의가 되지 않아 사업 진행 자체가 불투명한 상태에서 거액의 돈을 미리 건넨 것은 ‘별도의 보증’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것 아니겠느냐는 견해가 많다.
대북송금 관련자 언급 내용 | |
발언자 및 발언 시기 | 발언 내용 |
박지원 전 대통령비서실장(2002년 10월 5일) | 남북정상회담 대가나 남북 문제를 고리로 해서 북한에 1달러도 준 사실이 없다(국회의 대통령비서실 국정감사). |
박 전 실장(2003년 1월 27일) | 대북 송금 의혹은 청와대와는 무관한 일이다. 경제 관련 흐름은 나는 관여하지 않아 잘 모른다(청와대 직원 조회). |
김대중 전 대통령(2003년 1월 30일) | 현대상선의 일부 자금이 남북경제협력사업에 사용된 것이라면 앞으로 남북관계의 지속적인 발전과 국가의 장래 이익을 위해 사법심사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대국민 담화). |
박 전 실장(2003년 2월 4일) | 현대는 개성공단 등 7개 사업을 북측으로부터 30년간 보장받는 계약을 한 것이고 정부에서는 북한에 돈을 주지 않았다(출입기자들과의 간담회). |
김 전 대통령(2003년 2월 14일) | 남북관계의 이중성과 그리고 북의 폐쇄성 때문에 남북문제에 있어서는 불가피하게 비공개로 법의 테두리 밖에서 처리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다(대국민 기자회견). |
임동원 전 대통령 외교안보통일특보(2003년 2월 14일) | 현대는 2000년 8월 초 북측과 7대 경제협력사업 독점권에 관해 정식 합의서를 채택하고 권리금으로 5억달러를 (북측에) 지불키로 했다는 보고를 받았다(김 전 대통령의 대국민 기자회견 보충설명). |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2003년 2월 16일) | 대북 7대사업의 대가로 북한에 5억달러를 송금했다. 이것이 남북정상회담 성사에 일정 부분 기여한 것으로 본다(기자회견). |
김 전 대통령(2003년 6월 15일) | 국가와 우리 경제를 위해 수십년간 헌신한 사람들이 부정 비리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사법처리 대상이 되고 있는 데 대해 당시 책임자로서 참으로 가슴 아픈 심정을 금할 수 없다(남북정상회담 3주년기념 TV대담). |
임 전 특보(2003년 6월25일) | 북한에 송금한 1억달러는 남북정상회담 개최 합의를 계기로 북한의 어려운 사정을 고려해 정책적 차원에서 우리 정부가 스스로 북에 지원키로 한 것이지 정상회담 대가가 아니다(본보 기자와의 전화통화). |
이상록기자 myzodan@donga.com
▼송두환 특검 문답▼
송두환(宋斗煥) 특별검사는 25일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대북 송금의 성격을 “정책적 차원의 대북지원금이자 경제협력사업을 위한 선(先)투자금 성격”이라고 말했다. 송 특검은 “이번 사건은 민감한 내용이 많아 어느 선까지 발표해야할지 고민했다”고 털어놓았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약.
―김충식(金忠植) 현대상선 사장은 산업은행 대출금 4000억원을 정부가 썼으니 현대는 갚을 수 없다고 했다. 이는 특검 수사 발표와는 다르다.
“정확한 의도는 모르겠다. 원래 정부가 부담하기로 한 부분을 현대가 대신 했고 (그에 따라) 다른 걸 바란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북측이 먼저 송금을 요구했나.
“자세한 경위를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이 송금 약정을 안 시점은….
“공소장을 참고하면 짐작이 가능하다. 미흡한 부분은 향후 변론 과정에서 드러날 것이기 때문에 발표에서 유보했다.”(공소장에는 김 전대통령에 대한 보고 과정은 빠져 있다. 다만 2000년 4월 8일 북한측과 4억5000만달러 송금을 약정할 때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이 ‘대통령특사’ 자격이었다고 표현, 대통령과의 보고관계를 명시했다)
―1억달러를 정부가 보내기로 한 것은 김 전 대통령의 지시인가, 아니면 박 전 장관의 제안인가.
“일부 진술은 들었지만 사실관계를 확정할 수 있을 만큼 조사하지 못하고 수사를 종료했다. 이해해 달라.”
―대북정책 지원금으로 준 1억달러는 결국 정상회담 대가라는 뜻인가.
“당시 상황과 정상회담 추진 의도 등을 종합해 나름대로 성격을 규정했다. 왜 공개된 적법절차를 거치지 않았는가에 대해 아쉬움을 느낀다. 당시 사회적 정치적 여건을 비춰볼 때 공개적이고 투명하게, 적법절차에 의한 방식으로 (정상회담을) 추진하는 데는 그분들이 자신감을 갖지 못했던 게 아닌가 짐작한다.” 송 특검은 처음엔 “질문을 3개만 받겠다”고 했으나 10분간 질문에 응했다가 질문이 계속되자 입을 다물고 일어섰다.
장강명기자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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