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사건 은폐' 청와대 개입]청와대 입김에 경찰이 '私兵' 노릇

  • 입력 2003년 6월 27일 18시 36분


김영완씨 집 100억원대 떼강도 사건과 관련, 경찰청 감찰 결과 이 사건이 불거진 이후 지금까지 경찰이 해명한 내용 중 상당수가 거짓인 것으로 드러났다.

또 감찰조사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정황상 권력실세의 ‘보이지 않는 손’이 배후에서 작용했다는 의혹 등이 상당 부분 남아 있어 파문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거짓말 백화점=서대문경찰서는 당초 이 사건이 불거지자 “사건 발생 다음날인 2002년 4월 1일 김씨가 경찰서로 (전화로) 신고를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감찰조사 결과 김씨는 신고를 한 적이 없으며 당시 대통령민정수석실 박종이 경위(46·현 경감)와 상의한 끝에 4월 11일 담당자를 호텔에서 만나 피해사실을 진술했다.

은폐 지시와 관련해 이승재 당시 경찰청 수사국장은 처음엔 “이조훈 서울청 강력계장을 소개해 줬을 뿐 은폐 지시를 한 적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부분도 결국 당시 문귀환 서대문서 수사과장에게 “극도의 보안을 유지하라”며 은폐 지시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실무자인 이경재 서대문서 강력2반장도 이와 관련해 “청와대에 들어간 적이 없다”고 부인했으나 피해 진술과 중간보고를 위해 2번이나 청와대에 들어간 것으로 확인됐으며 박 경위와 식사까지 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대길 당시 서울지방경찰청장도 일관되게 “은폐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으나 김윤철 당시 서대문서장(현 강원 삼척서장)은 “이 청장이 안(청와대)과 관련이 있다며 극도의 보안을 유지하도록 지시했다”고 밝혔다.

▽사병화된 경찰=경찰이 최초 신고에서부터 범인 검거까지 일관되게 은폐 축소를 한 것은 당시 박지원 대통령정책특보 때문이라는 것이 경찰 내부의 지배적인 관측.

박 경감은 박지원씨의 고향후배로 요직인 경찰청 조사과(일명 사직동팀)를 거쳐 현재 김대중 전 대통령 사저 경비를 맡고 있는 인물. 특진을 2번이나 했으며 경찰 내에서 가장 어렵다는 경감 승진을 4년여 만에 하는 등 초고속 승진했다. 물론 박지원씨의 위세 때문에 사실상 불가능한 인사가 이뤄졌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박 경감은 경찰 최고위직인 서울청장, 경찰청 수사국장과 수시로 전화를 했으며 서울청장과 식사도 같이 한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검은돈을 도난당한 김영완씨가 돈의 실체가 드러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박지원씨 또는 박 경감에게 극도의 보안수사를 요구했으며 경찰은 이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는 것.

▽여전히 남는 의혹=박지원씨의 개입 여부가 의혹의 핵심이다. 박지원씨를 포함해 권력실세와 친분관계를 유지하던 김영완씨가 경찰의 초급 간부인 경위에게 전화를 걸어 부탁을 했을 가능성은 적다.

김영완씨가 박지원씨를 통해 일을 처리했을 가능성이 높지만 당사자인 이대길 전 청장, 이승재씨, 박 경감 모두 이 부분에는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이 전 청장이 누구로부터 사건 발생 연락을 받았는지도 규명돼야 할 의혹.

박 경감은 이승재 당시 수사국장에게 전화를 건 사실은 인정했지만 이 전 청장에 대해서는 “사건 해결 후 말했다”고 주장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이 전 청장에게는 ‘윗선’이 직접 부탁을 했을 가능성도 있다.

도난당한 돈의 성격에 대해 경찰이 애써 외면한 것도 고위층과 관련된 검은돈이라는 짐작을 했기 때문이 아니겠느냐는 의혹도 일고 있다. 당시 김영완씨는 피해 진술에서 도난당한 채권의 일련번호조차 제대로 밝히지 않았으며 경찰 역시 굳이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이진구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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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이 경감은 누구▼

박종이 경감

김영완씨 집 100억원대 떼강도 사건을 막후에서 은폐하도록 ‘힘을 쓴’ 청와대 관계자가 김대중(金大中·DJ) 전 대통령의 동교동 사저 경호책임을 맡고 있는 박종이(朴鍾二·46) 경감으로 밝혀졌다. 경찰 내부에는 당시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실 행정관으로 파견근무 중이던 박 경감이 상식을 뛰어넘는 초고속 승진을 한 것을 놓고 뒷말이 무성하다. 권력 실세가 뒤를 봐주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승진이라는 것. 이에 따라 박 경감과 박지원(朴智元) 당시 대통령비서실장, 김영완씨 등 3인의 커넥션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박 경감은 1982년 순경으로 경찰에 투신한 뒤 DJ정부 출범과 함께 경찰 사상 유례없는 초고속 승진을 기록한 인물. DJ정부 출범 직전인 97년 말 조선일보 청룡봉사상을 받은 것을 계기로 경위로 특진해 옷로비 사건으로 폐지된 경찰청 조사과(사직동팀)에 근무했다. 특히 서울청 보안부를 거쳐 대통령민정수석실에 파견근무를 하다가 경위 승진 4년 만인 지난해 11월 경감으로 특진해 DJ사저 경비를 맡은 30중대 중대장으로 있다.

시험 이외에 특진이나 심사승진의 경우 경위에서 경감으로의 승진은 빨라도 6년, 길면 10년 이상이 걸리는 게 보통인데 박 경감은 불과 4년 만에 경위에서 경감으로 승진했다. 경찰 관계자는 “4년 만에 경감이 됐다는 것은 경찰조직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당시 박 실장이 뒤를 봐줬다는 소문이 파다했다”고 털어놨다.

이에 대해 박 경감은 “대통령민정수석실 파견 전에 박 전 실장과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인 것은 맞다”며 “그러나 박 전 실장과는 본(本)도 다르고 인척관계도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한편 박지원 이익치(李益治) 정몽헌(鄭夢憲)씨 등 정재계의 내로라하는 인사들과 교류해왔던 김영완씨가 박 경감을 만나게 된 경위 역시 석연치 않다. 박 경감은 “사직동팀에 근무할 당시인 2001년 말 아는 사람의 소개로 김영완씨를 저녁식사 자리에서 처음 만났다”며 “한두 차례 저녁식사를 하면서 이름을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박 경감이 박 전 실장 때문에 김영완씨를 알게 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또 강도를 당한 김영완씨가 박 경감에게 직접 전화를 했다는 경찰의 해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박지원 이익치 정몽헌 등 소위 막강한 힘을 발휘하던 정재계 인사들과 교류하던 김영완씨가 말단간부인 경위에게 전화를 걸기보다는 그 ‘윗선’에 얘기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

박 경감은 이 사건과 관련해 박 전 실장의 지시를 받은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박 전 실장과는 관련이 없다”고 부인했다. 특히 당시 경위에 불과했던 박 경감이 경찰청 이승재 수사국장(치안감)에게 전화를 걸어 사건 은폐를 부탁한다는 것은 계급조직인 경찰 생리상 있을 수 없다고 경찰 관계자들은 입을 모았다. 한 경찰 관계자는 “(박 경감이) DJ정권하에서 ‘경찰 집사’와 다름없는 역할을 했다”며 “불똥이 박 전 실장에게까지 튀지 않도록 총대를 멘 것일 수 있다”고 해석했다.

허진석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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