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개혁과 경제 개선=사회주의 경제학의 대표적 학자인 헝가리의 코르나이는 계획경제의 개선 또는 완성(perfection)과 개혁(reformation)은 명백히 구분돼야 한다고 말한다.
사회주의 경제 변화를 개혁이라고 부르려면 공산당 독재와 공식 이데올로기의 지배, 국가 소유, 시장에 대한 관료적 조정(통제) 우위 등 사회주의 체제를 지탱하고 있는 세 가지 축 중 하나 이상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셋 모두를 유지하면서 진행되는 변화는 기존 체제의 개선 혹은 완성 과정에 불과하다는 것.
북한은 지난해 7월 1일 임금과 물가를 대폭 인상하고 기업의 독립채산제를 강화했다. 어떤 변화도 위 세 가지 틀에 해당되지 않아 전형적인 경제 개선 과정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당시 북한은 개선책을 통해 창궐한 시장 경제적 요소(농민시장과 장마당 등)를 억제하고 국가 계획경제를 정상화하려 했다. 이와 함께 생산과 물자 유통의 정상화를 노렸다.
▽종합시장과 계획 외 생산의 의미=북한이 종합시장을 설치하고 공산품 유통을 허용한다는 사실은 4월 10일자 조선신보와 6월 10일자 조선중앙통신에 의해 알려졌다.
그러나 어떻게 시장에서 공산품이 유통되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다. 총련산하 재일본 조선사회과학자협회 연구기획부장 강일천(姜日天)씨 등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종합시장’은 기존의 농민시장이나 장마당을 활성화하는 차원이 아닌 명실상부한 시장 메커니즘의 도입이다. 기존의 관료적 조정을 포기한 것은 아니지만 시장 기능을 공식적으로 확대 인정한 개혁이다. 특히 기업이 시장 자체를 목표로 생산을 하게 된다는 점이 핵심이다. 잉여생산물을 내다파는 차원이 아닌 것이다.
한국 정부의 정보당국자는 “북한 당국은 기업이 종합시장에 더 많은 물자를 공급하도록 독려하기 위해 계획 생산량을 줄였다”고 말했다.
▽당국의 의도와 전망=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부족한 물자의 생산과 유통을 정상화하겠다는 것이 북한의 의도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북한 당국이 ‘시장 도입’을 처음부터 의도한 것은 아니다. 신지호(申志鎬) 한국개발연구원(KDI) 박사는 “합영법을 실시했다가 실패하자 나진 선봉, 신의주 특구를 개방한 것처럼 7·1 조치가 생각대로 되지 않자 종합시장을 열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한 경제 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핵 문제 등 대외관계 개선과 대폭적인 외부지원이 필수적이다. 이찬우(李燦雨) 일본 사사가와평화재단 박사는 “우선 북측의 선택이 중요하지만 민족경제의 문제라는 시각에서 남측이 할 수 있는 일도 많다”고 말했다.신석호기자 kyle@donga.com
▼시장과 개혁에 대한 북한측의 발언 일지▼
△2003. 4. 1=조선신보, “나라에서는 시장을 통제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사회주의 상품유통의 일환으로 인정하고 있다. 3월 말부터 평양에서도 구역마다 있는 ‘농민시장’을 ‘시장’으로 부르게 되었다. 농산물만이 아니라 각종 공업제품도 거래되고 있는 현실에 맞게 이름을 고친 셈이다.”
△2003. 6.10=조선중앙통신, “공화국 정부는 여러 기회에 걸쳐 경제개혁을 추진시켜 왔다. 시장 운영이 처음인 만큼 다른 나라로부터 전문가 양성, 경험 도입을 비롯한 협조를 가능한 한 받으려고 하고 있다.”
△2003. 6.12=조선중앙통신, 완성 직전의 통일거리시장 사진 보도.
△2003. 6.16=조선신보, “최근에 조선의 경제행정 일군들은 시장도 상품유통의 한 형태라고 하면서 사회주의를 하지만 시장의 기능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2003. 6.28=강일천 재일본 조선사회과학자협회 연구기획부장, “기업의 계획 외 생산 및 종합시장 판매가 허용된다. 개인과 기업의 신청이 많아 추첨으로 종합시장 점포를 배정한다. 합영 합작 무역기업의 직매점이 설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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