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미일 정상회담에서 한미일 3국은 북한의 핵위협에 ‘대화와 압력’으로 대처한다는 원칙에 합의했다. 그러나 이 같은 자세와 속마음 사이에는 괴리가 있다.
북한 미국 중국 3자회담에 한국과 일본의 참여가 이뤄지면 한미일은 북한의 핵 보유를 단념시키기 위한 공통의 방침을 정해야 한다. 이를 실현시키기 위한 순서와 정책 내용도 결정해야 한다. 한미일 실무협의는 그 밑그림을 그리는 첫 회합인 것이다.
한미일이 ‘대화와 압력’을 한목소리로 강조하지만 각자가 받아들이는 방식은 다르다. 미국은 ‘대화’ 쪽에는 거의 관심을 표시하지 않는다. 북-미 양자 대화는 접수 자체를 거부한 채 ‘압력’을 밀어붙이는 노선을 고수한다.
한국은 한미정상회담에서는 ‘압력’을 가하기 위한 ‘추가 조치’를 약속했지만 지금까지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 속내는 김대중(金大中) 정권의 ‘햇볕정책’ 계승이다.
일본은 북한에 대한 부정송금 단속을 강화하는 등 경제 분야에서 ‘압력’을 가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유엔의 경제제재를 발동시키지 않기 위한 예방적 ‘압력’의 성격도 갖고 있다. 미국의 압력이 지나치면 북한이 궁지에 몰려 극한행동을 할지 모른다는 점을 걱정하는 것이다. ‘압력’과 ‘대화’ 사이, 미국과 한국 사이에서 흔들리는 모습이다.
한미일간 대북정책의 엇박자는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를 둘러싸고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KEDO는 1994년 북-미합의에 의해 북한의 ‘핵’(재처리)을 ‘핵’(경수로 2기)으로 대체해 핵 위협을 제거하기 위한 기구로 발족했다.
KEDO는 난산이었다. 미국은 북한에 중유를 공급하는 책임만 지고 막대한 건설비는 한국과 일본에 떠넘겼다. 한일 양국은 당초 강하게 반발했다. 특히 체르노빌 사건의 재발을 염려한 일본은 북한 원자력발전의 안전성에 대해 강한 우려를 갖고 있었다.
지난해 가을 북한이 비밀리에 핵을 개발해온 사실이 드러나자 미국은 태도를 바꿔 KEDO를 쓸모없는 물건처럼 취급하면서 중유 공급을 중단했다. 미국 정부의 고위관리는 “중지도, 폐지도 아직 정식으로 결정한 것은 아니다”고 말하지만 미국 내에서는 북한이 북-미합의의 무효를 주장하고 ‘남북 비핵화 선언’을 파기했다는 이유로 중지론에 힘이 실리고 있다.
반면 한국과 일본은 경수로 공사의 중단에 반대하는 쪽이다.
“미국이 공사 중지를 흘리는 것만으로도 북한의 공사현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의 안전에 악영향을 미친다.”(일본의 고위 관리)
“(공사를 중지하는) 상황이 되면 북한의 매파에 힘을 실어줄 뿐이다.”(한국 정부 요인)
양국 모두 거액의 투자를 해온 만큼 공사 계속을 요구하는 관련업계의 주장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비밀리에 농축 우라늄형 핵개발을 진행해온 북한에 아무런 보완장치도 없이 선뜻 원자로 부품을 줄 수도 없다. 심각한 딜레마인 것이다.
북한은 달팽이처럼 변덕이 심한 존재여서 조금이라도 이물감이 있는 것과 접촉하면 껍데기 속으로 몸을 숨긴다. 4월 중국 베이징(北京)의 북-미-중 3자회담에서 북-미 양자가 협의하는 자리가 마련되지 않은 데 발끈해 3자회담을 재개하자는 중국의 제안을 내쳤다.
오히려 이런 때일수록 KEDO의 효용을 잘 따져봐야 하지 않을까. KEDO는 북한과 정치적 관계를 지속적으로 갖고 있는, 몇 안 되는 다각적인 장(場)이다.
분명 KEDO는 근본적, 항구적 해결책이 아니다. 기껏해야 우회적, 잠정적 편법의 도구일 뿐이다. ‘외교마술’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KEDO가 현 상태에서 북한에 원자로를 만들어줄지 여부와는 별개로 그 틀은 남겨두는 편이 좋다. 비핵화를 위해 북한과의 어떤 해결책을 강구하더라도 에너지 공급 보장은 약속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KEDO와 같은 다각적 틀이 필요한 것이다.
한 번 더 ‘외교마술’을 내놓아야 할 때다.
후나바시 요이치 일본 아사히신문 칼럼니스트
▼후나바시 요이치는 ? ▼ |
제휴사인 일본 아사히신문의 저명 칼럼니스트인 후나바시 요이치(船橋洋一·59)의 칼럼을 금요일에 부정기적으로 게재합니다.
미국 워싱턴 정가에서도 필독물로 평가되는 그의 칼럼은 한반도 주변과 세계 곳곳에서 전개되는 국제정치의 기상도를 명쾌하게 보여줄 것입니다.
◇경력
△1944년 중국 베이징(北京) 출생 △1968년 일본 도쿄대 졸업, 아사히신문 입사 △1975~76년 미국 하버드대 니만펠로 △1984~87년 아사히신문 워싱턴특파원
△1987년 미국경제연구소 객원연구원
△1993~1997년 아사히신문 미국총국장
△1998년~ 아사히신문 특별편집위원(칼럼니스트)
△현재 아사히신문에 ‘일본@세계’ 칼럼 주 1회 게재
△저서 : ‘냉전후’(1992년) ‘일본의 대외구상’(1993년) ‘세계 브리핑’(1995년) 등 국제정치와 경제에 관한 서적 다수.
△수상 경력 : 산토리학예상(1983년) 일본기자클럽상(1994년) 아시아태평양상대상(1996년) 신쵸학예상(1998년)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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