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언제는 그렇지 않았느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그렇다. 우리나라 방송은 건국 이후 지금까지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을 누려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새삼스럽게 이런 말을 화두로 삼는 까닭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다. 국영방송 시대도, 군사독재정권 시대도 아닌 민주정부 아래서 방송이 정치바람에 따라 이리저리 심하게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방송委, 여야 나눠먹기로 변질 ▼
‘문민정부’가 수립되자 방송의 정치적 독립을 실현하기 위해 공보처가 담당하던 방송행정을 민간기구로 이관해야 한다는 요구가 사회 각계각층에서 세차게 일어났다. 그 결과 오랜 진통 끝에 ‘국민의 정부’에서 방송위원회를 독립된 방송행정기구로 제도화하는 ‘방송법’이 제정되고 2000년 3월 13일부터 시행되었다.
그러나 그 뒤 이러한 제도적 장치로 방송의 정치적 독립이 이뤄지리라던 기대는 무산되고 말았다. 방송위원회의 구성이 국회에 의석을 가진 정당들에 의해 나눠 먹기식으로 왜곡되었기 때문이다. 모두 9인의 위원 가운데 대통령이 추천하는 3인을 제외한 6인은 국회가 추천하기로 되어 있다. 법을 만들 때 국회에 이같이 많은 몫을 할애한 것은 그래도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전문성과 사회 각 분야의 대표성을 지닌 인사를 방송위원으로 추천하리라는 ‘신뢰’에 근거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현실은 의석수에 따라 정파간에 나눠 먹기가 되고 말았다.
그 결과 방송위원회는 전문성도 대표성도 확보하지 못하게 되었다. 방송과 통신의 융합시대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할 방송 통신기술, 뉴 미디어, 미디어 법제 등의 전문가들이 배제된 위원회가 되고 말았다. 국회 스스로 국민의 신뢰를 발로 차버린 꼴이다. 애당초 국회를 존중했던 입법 의도가 너무나 순진했다는 것을 탓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정파간에 나눠먹더라도 전문성과 대표성에 따라 몫을 배분할 수도 있으련만 그런 배려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면 돌봐줄 사람을 천거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기껏 한다는 일이 야당 몫 상임위원 자리를 하나 더 늘리는 법 개정이었다.
방송행정의 독립기구가 이렇게 정치에 의해 휘둘려서야 어떻게 방송의 독립성이 보장될 수 있겠는가. 더욱 한심한 것은 공영방송인 KBS의 이사회와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회 구성도 방송위원회를 구성하고 있는 정파간의 비율에 따라 배분되었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다. 이번의 KBS 사장 인선 과정에서 숨김없이 드러난 바와 같이 대통령이 이른바 자신과 ‘코드’가 맞는 사람을 사장으로 임명하는 한 방송이 정치적으로 독립성을 견지할 수 없다. 문성근씨를 연속 프로그램의 고정 진행자로 선정한 것이 작지만 그러한 단적인 사례일 것이다. 그는 진행자로서 훌륭한 자질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의 당파성을 감안할 때 그런 역할을 맡기지 않는 것이 적어도 공영방송의 ‘양식’이어야 옳다. 앞으로 두고 볼 일이지만 방송개혁을 명분으로 내세워 특정한 정치노선으로 국민을 교화할 시도를 한다면 공영방송은 자진해 방송을 정치권력에 헌납하는 일이 될 것이다.
▼특정 정치노선 敎化시도 말아야 ▼
방송이 정치에 휘둘리게 되는 또 다른 중요한 원인은 방송이 스스로 공정성을 포기하기 때문이다. 지난번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일부 방송사들이 불공정한 방송을 일삼았던 후유증이 바로 방송이 정치에 휘둘림을 당하는 빌미가 되고 있다는 점을 깊이 자성해야 한다. 한나라당이 국회에서 KBS의 결산승인안을 부결시킨 것도 방송이 스스로 정치로부터 휘둘림을 자청한 측면이 있다. 2001년 결산승인 과정에서 국회가 시정 권고한 사안을 고치지 않고 되풀이한 무신경함을 질타하지 않기를 어떻게 기대할 수 있다는 말인가.
끝으로 한나라당에도 한마디 충고하고자 한다. 제발 방송구조개혁을 감정에 치우쳐 불쑥 불쑥 내밀지 말아 달라는 것이다. 방송의 독립성 보장을 위한 근본적 장치를 마련해 충분한 논의를 거쳐 국민의 동의를 받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 국회가 KBS 예산을 사전심의 하게끔 법을 개정하겠다는 발상도 KBS 이사회의 독립성을 침해하게 되는 것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유재천 한림대 교수·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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