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측 대표단장인 김영성 내각 책임참사가 이날 오전 요구한 5개항의 핵심은 한국이 한미공조에 나서지 말고 민족공조 원칙을 천명하라는 것이다. 특히 “전쟁과 관련된 어떠한 행위에도 가담하지 않는다”는 제1항은 미국 일본이 주도하는 대북한 압박에 한국이 동참하지 말고, 북한의 방어막 역할을 해 달라는 의미로 풀이된다. 그는 “민족공조가 문제해결의 천하지대본(天下之大本)이다”는 표현도 동원했다.
이 같은 요구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방미성과인 한미공조를 통한 북한핵 해결 원칙을 뒤집어야 하는 것으로, 한국 정부로선 받아들일 수 없는 사안이다. 남측 수석대표인 정세현(丁世鉉) 통일부 장관은 북측 요구를 예상한 듯 회담시작 직전부터 분명한 선을 그었다. 그는 “북한 핵 문제는 남북끼리 힘을 합쳐 해결할 일이 아니라, 국제사회와 협조하고 균형을 맞춰야 한다. 동굴 속의 (민족) 공조라면 소용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정 장관은 이어 기조발언에서 북측에 확대 다자회담 참여를 강한 어조로 촉구했다. 김 책임참사는 “핵문제에 대해서도 의견을 교환하자”고 대화의지를 내비치기도 했으나 “이 문제는 조(북한)-미간에 토론할 문제다”며 선을 그었다. 그는 오히려 “주한미군의 전력증강이나, 북한을 주적(主敵)으로 삼는 시각이 한반도의 긴장을 높이고 있다”고 맞섰다.
회담 대변인인 신언상(申彦祥) 통일부 정책실장은 다만 “정 장관이 다자회담 참여를 강경한 어조로 말했는데도 북측이 이를 듣고만 있었던 것도 변화라면 변화”라고 말했다. 또 북측은 회담의 걸림돌이 될 것으로 전망했던 ‘북한 주적론’도 예상외로 간략하게 언급했다는 것이다.
신 실장은 남북대화 특성상 북한은 과거에도 첫날 회담에선 늘 기존입장을 되풀이했고, 막바지에 가서야 ‘숨겨놓은 카드’를 껴냈다는 점을 상기시키며 회담 결과에 대한 기대감을 표시했다.
실제로 북한이 제시한 5개항 가운데 상호비방 방송 중지, 올 추석 때 이산가족 면회 및 상설면회소 착공, 민간차원의 8·15행사에 대한 정부지원 문제는 ‘작은 시각차’가 존재하긴 하지만 남북관계 유지를 위해서 남측이 적극 검토할 수 있는 사안이다.
이틀째 회담일정을 마친 북측 대표단은 오후엔 남산 서울타워를 둘러보며 여유 있는 시간을 보냈다. 정 장관은 서울타워 전망대에서 무악재를 가리키며 “저 길을 통해 62km만 더 가면 개성이 나오고, 신의주로 연결된다”고 설명했다. 김 책임참사는 방명록에 ‘민족의 통일 번영을 이루자’고 썼다.
11차 장관급회담에서 나타난 주요 현안에 대한 남북의 시각차 | ||
| 남측 | 북측 |
북한핵 해법 | 확대 다자회담의 유용성과 시급성을 북측에 설명하고, 조속한 수용 촉구 | 핵문제는 북-미간 문제. 미국이 북한에 대한 적대시정책을 포기해야 해결된다. |
한반도위기 요인 | 북한의 핵개발 용납 안돼. 북핵 해결돼야 북한의 안전문제도 보장된다. | 주한미군의 전력증강이나 한국군의 주적(主敵) 개념이 긴장을 고조시킨다. |
북한의전쟁 언급 | 북측이 “대화에는 대화로, 전쟁에는 전쟁으로”라고 말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 외세와 대화하거나, 전쟁을 할 수 있는 준비가 돼 있다. 하지만 근본 입장은 평화적 해결이다. |
민족 공조냐,한미 공조냐 | (핵 문제는) 남북간 민족 공조도 필요하지만, 국제사회와 균형을 맞춰 협조할 문제다. | 민족 공조가 민족문제 해결의 천하지대본이다. 조성된 난국을 민족 공조로 타개하자. |
김승련기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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