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가 29일 발표한 재정·세제개혁 로드맵에 담긴 지방분권과 관련된 내용은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대선 공약사항을 구체적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골자는 중앙정부가 갖고 있던 기능을 과감하게 지방정부로 이양하면서 중앙정부가 움켜쥐고 있던 예산도 함께 지방으로 넘기겠다는 것.
위원회는 교육이나 경찰 복지 사회간접자본(SOC) 시설관리 등 지역 주민들과 밀접한 업무는 대부분 지방으로 넘겨주기로 했다. 또 중앙정부가 각 지자체에 나눠 주던 지방교부금 및 지방소비세 등도 함께 일괄적으로 이양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현재 80 대 20인 국세와 지방세 비율 가운데 지방세 비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지방소비세를 새로 도입하고 국세 일부를 지방세로 돌리는 방안도 마련했다.
구체적으로는 종합토지세와 재산세 등 부동산 세제를 개편하고 지방자치단체가 자체적으로 관광세와 카지노세 원자력발전세 등 세원을 발굴해 직접 세금을 매길 수 있도록 했다.
특히 각 부처에서 지방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활용했던 국고보조금 제도를 2005년부터는 부처가 관리하지 않고 지방으로 넘긴다는 구체적 일정을 제시했다. 이를 위해 위원회는 9월까지 11조원에 달하는 국고보조금 사업의 실태를 조사하고 연말까지 국고보조금 정비방안을 마련해 재원을 상당 부분 지방으로 넘기기로 했다.
이외에도 중앙정부가 지방에 시달하던 예산편성지침도 폐지하고 지방자치단체의 지방채 발행을 통한 재원 조달을 장려하기로 했다.
별로 많지 않았던 지방의 재산세와 종합토지세의 과표를 올해부터 매년 3%포인트씩 높여 시가가 과표에 반영되도록 주택과표산정체계도 바꾸기로 했다.
한편 위원회는 지방정부를 위한 재정개혁 외에 중앙정부 차원의 재정개편 방안도 제시했다. 내년부터 예산당국이 부처별로 예산총액을 할당하면 사업별로 어디에다 쓸지는 해당 부처가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톱-다운(사전배분) 방식’의 재정운용을 채택하기로 한 것이다.
또 예산항목뿐 아니라 기금까지 포괄하는 정부 사업에 대해 미리 성과목표를 제시하는 ‘성과관리제도’를 단계적으로 도입해 그간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졌던 재정체계를 바꾼다는 장기 플랜도 내놓았다.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
▼완전포괄과세▼
상속·증여세 완전포괄주의 도입은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대통령 후보자 때부터 이른바 ‘재벌 개혁’을 위한 주요 공약으로 내건 사안이다. 하지만 재계는 물론 학계 일각에서도 위헌(違憲) 문제까지 제기하면서 한때 도입 시기가 늦춰지거나 백지화될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왔다. 하지만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가 이번에 ‘내년 추진’으로 못 박음에 따라 입법 과정에서 상당한 논란이 예상된다.
▽정부 계획과 배경=현재 한국은 세법(稅法)에 상속과 증여 유형을 나열해 놓고 유사한 행위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는 ‘유형별 포괄주의’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반면 상속·증여세 완전포괄주의란 과세 대상을 법에 명시하지 않고 모든 상속·증여 행위에 대해 세금을 매기는 것. 상속·증여세 세수(稅收)가 전체 세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대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보이는 미국이 이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정부는 법망을 교묘히 피해가는 일부 고소득층의 변칙상속이나 증여를 막고 형평성을 높이기 위해 완전포괄주의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상속·증여세 완전포괄주의’ 관련 법안을 올 9월 정기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또 국회에서 이 법안이 통과되면 하위 법령 정비에 나서 내년부터 전면 시행할 방침이다.
정부는 위헌 논란을 의식해 하위 규정에 보완장치를 마련할 방침으로 알려졌다. 또 법조계와도 지속적인 협의를 하고 있다는 것.
▽문제는 없나=상속·증여세 완전포괄주의 도입 강행 방침에 대해 일부 조세 전문가들은 ‘조세의 세목(稅目)과 세율은 법률로 정한다’라는 조세법률주의에 위반된다며 위헌 논란을 피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한다.
이석연(李石淵) 변호사는 “상속·증여세 완전포괄주의는 조세법률주의 원칙에 위배되기 때문에 헌법 취지와 맞지 않다”며 “아무리 목적이 좋더라도 헌법을 무시하고 ‘세(勢)몰이’식으로 추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강조했다.
재계도 반대논리를 개발하는 등 대응에 나설 방침이다.
재계 관계자들은 특히 세무당국의 재량권 남용 가능성을 폐해의 우선순위로 꼽았다. 또 상속·증여세가 전체 세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아 완전포괄주의가 도입되더라도 세수 확보에 도움이 되지 않고 재산의 해외 도피만 부추길 수 있다는 주장도 펴고 있다.
송진흡기자 jinhup@donga.com
▼4大연금 개편▼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가 공적연금 보험료와 급여체계의 개선을 건의한 것은 복지보다는 중장기재정의 건전성을 염두에 둔 것이다.
공적연금의 적자 때문에 국가 재정이 거덜 날 수도 있다는 위험성을 경고한 것이다.
▽개편 배경=위원회는 군인연금이 1973년, 공무원연금이 2001년 고갈된 데 이어 2029년에는 사학연금이, 2047년에는 국민연금이 바닥을 드러낼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와 함께 급속한 고령화에 따라 건강보험의 재정불안도 지속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위원회에 전문위원으로 참가하고 있는 순천향대 김용하(金龍夏·경제학) 교수는 “지난해 말 현재 4개 연금과 건강보험의 수지(收支)구조가 안고 있는 잠재적 부채가 340조원에 이른다”며 “이대로 내버려 두면 국민경제를 유지할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
국민연금 등의 수지구조가 안고 있는 위험성에 대해서는 위원회뿐 아니라 국책연구기관 등의 경고도 끊이지 않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해 11월 내부보고서에서 공무원연금의 누적적자가 2030년에는 약 200조원에 이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개편 방향과 예상되는 어려움=위원회는 개편방향으로 △보험료와 급여체계를 적정부담 및 적정급여 원칙에 따라 조정 △건강보험 재정합리화 방안 마련 △재정위험관리시스템 구축 등 3가지를 내세웠다.
원칙론 외에 구체적인 안은 전혀 제시하지 않았다. 그렇다 해도 구체적인 안이 있느냐 없느냐 여부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정작 중요한 문제는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느냐’이다.
한 예로 최근 정부와 민주당이 국민연금 지급액을 현재의 평균소득 60% 수준에서 55%로 낮추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하자 거센 반발이 뒤따랐지만 이 정도로는 국민연금의 고갈시기를 2, 3년 늦추는 데 불과하다.
물론 이 같은 반발에는 공무원·군인·사학연금 등에 대해서 올해 연금 수령액을 올려준 데 따른 형평성 논란이 ‘기름’을 부은 측면이 있지만 연금구조 개혁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예다. 건강보험도 수지를 맞추려면 반발이 불을 보듯 뻔하다. 조세연구원에 따르면 건강보험의 균형재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보험료율을 올해 3.95%에서 2010년 5.86%, 2030년 10.22%, 2050년 14.36% 등으로 올려야 한다. 김 교수는 “이번 방안은 관계부처와 충분한 협의를 거치지 않은 로드맵”이라면서 “국민적 합의는 제쳐두고 보건복지부 등이 적극적으로 재정적자를 해소하는 데 나설지도 불확실하다”고 설명했다.
천광암기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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