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동기 논쟁은 본질 벗어나 ▼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이 문제를 둘러싸고 유치한 논쟁이 벌어지려 하고 있다. 발단은 정 회장이 “부친에게서 물려받은 대북 사업에 대한 국민적 평가가 엇갈리자 크게 고민했다”는 현대그룹 고위 관계자의 진술이다. 민주당의 김경천 의원은 당무회의에서 대북 비밀 송금 특검이 정 회장을 죽였다고 목청을 높였다. 일각에서는 앞으로 본격화될 150억원 비자금 수사 때문이지 않겠는가 하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물론 자살의 직접적 동기를 규명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이런 식의 문제 설정은 사태의 본질을 비켜 가고 있다. 그것은 정책대안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오로지 상대편을 누르기 위한 정쟁에만 몰두해 있는 정상배들의 권력투쟁 수단에 불과하다. 또한 그러한 논의는 ‘수구냉전’과 ‘친북매국’이라고 서로를 비난하며 헐뜯는 현재의 양극 대립 구도를 강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이는 고인의 죽음을 헛되게 하는 행위다.
그렇다면 정 회장의 죽음에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도출해 실천해야 할 것인가. 핵심은 남북경협의 원칙과 기준을 올바로 설정해 집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남북경협은 인도주의적 지원, 민간기업의 비즈니스, 정부 차원의 공적 협력 사업의 세 범주로 나누어진다. 각각의 영역은 인도주의, 수익성, 국가의 전략적 이익 실현이라는 독자적 준거를 지닌다. 햇볕정책의 문제는 두 번째 영역과 세 번째 영역을 구분하지 못한 데 있다.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에 의한 경수로 건설 사업, 금강산관광 사업에서 확인되었듯이 수익성 기준만으로 프로젝트의 실행 여부를 판단할 수는 없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더 높은 차원의 국익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경의선 연결이나 개성공단 조성 사업과 같이 필요하나 수익성이 의심되는 사업에 민간기업이 참여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런 분야의 사업은 정부가 ‘공공재(public goods)’로 인식해 책임지고 공적 협력사업으로 추진해야 한다. 공원 조성이나 도로 건설을 공공사업으로 하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김대중 정부의 실책은 바로 공공재로 취급해 추진해야 할 사업을 민간 수익사업으로 분류해 정경분리 원칙을 적용한 데 있다. 금강산관광 사업과 개성공단 조성 사업이 대표적 사례다. 그러나 이 두 사업은 경제적으로 성공하지 못했고, 관광공사와 토지공사의 개입을 통해 반관반민(半官半民)이란 기묘한 형태를 띠게 되었다. 정보경제학은 이런 경우 ‘주인-대리인 문제(principal-agent problem)’의 발생으로 대리인의 도덕적 해이(moral hazard) 현상이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김대중 정부와 현대그룹의 관계가 바로 그러하다.
따라서 이제 김대중 정부의 정경분리 원칙을 전면 수정해야 한다. 그것은 명목상 정경분리였지 대북 비밀 송금 사건에서 드러났듯이 거대한 정경유착이었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을 민간기업에 대행시키면 정경유착은 필연적이다. 더군다나 대북 사업의 특성상 안보불안까지 초래할 수 있다. 이제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토지공사와 관광공사를 내세우고도 정경분리 운운하는 코미디는 더 이상 필요 없다.
▼남북경협 ‘공공재’ 개념 도입을 ▼
혹자는 말할는지 모른다. ‘퍼주기’에 대한 반대 여론이 그와 같은 왜곡된 구조를 낳았다고. 그러나 진정 원칙에 충실하고 떳떳한 정부라면 이런 사업에 대한 국민적 동의를 당당히 구해 나가야 한다. 야당도 이에 협조해야 한다. 다수 국민이 반대하고 혐오하는 것은 ‘퍼주기’ 그 자체가 아니라, 대북 비밀 송금 사건에서 드러난 것과 같이 상식과 원칙을 일탈한 뒷거래였음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남북경협에 공공재 개념을 도입하자. 우리는 제2, 제3의 정몽헌을 원치 않는다.
신지호 서강대 겸임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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