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김문수 의원과 4개 신문사에 대해 명예훼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는 보도를 보고 쓴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어떤 ‘간덩이 부은’ 판사가 감히 그 사건을 담당할 것인가? 세계 언론은 이 전대미문의 사건을 어떻게 보도할 것인가.
▼전대미문의 ‘신문고발 사건’▼
노 대통령이 동아, 조선, 중앙 세 신문에 노해서 펄펄 뛰고 안절부절못하고 언론을 손보아줄 수도 있다는 식의 발언까지 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에게 “대통령이란 직업이 원래 낱낱이 언론의 감시를 받는 것이 아닙니까?”하고 항의하고 싶었다. 언론이 정부의 수장(首長)을 감시하지 않는다면 언론의 본분을 저버리는 것이다. 유능한 대통령이라면 호의적인 언론이나 비판적인 언론이나 다 껴안고 가면서 자신에 대한 언론의 우려와 의구가 기우였음을 입증해 보여야 하지 않는가.
“신문 없는 정부보다 차라리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하겠다”는 토머스 제퍼슨의 말까지 인용하지 않더라도 언론이 그 역할을 포기하면 정부가 권력을 남용하게 되고 그 결과는 모두 대통령의 책임으로 돌아온다.
언론이 대통령을 감싸주고 대통령의 정책과 행동을 호의적으로 보도해 주면 대통령의 역할을 수행하기가 쉬울 것 같지만 그것은 대통령이 불명예 전직 대통령이 되는 지름길이다. ‘참여정부’가 출범한지 6개월도 안되었는데 벌써 권력 주변의 인물들이 여럿 중대한 과오를 범했다.
대통령이 연일 언론에 대해 적대적 발언을 하면 국민은 나라가 어수선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나는 대통령이 (자신과 그의 지지자가 생각하기에 부당하게) 언론의 비판과 비난을 받더라도 언론에 대해 일체 함구한다면 그가 훨씬 돋보이고 결국은 언론도 그에게 훨씬 호의적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그가 언론을 상대로 소송을 해서 승소하면 형님의 땅 등에 대한 의혹이 말끔히 해소되겠는가. 대통령과 언론의 법정 싸움에서 대통령이 골리앗에 도전하는 다윗으로 비칠 수 있겠는가. 그렇게 비친다면 그것이 바람직한 것인가.
노 대통령이 소송을 취하하고 단 반년 만이라도 자신에 관한 언론 보도에 대해 일절 논평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할 것을 제의한다. 우리 국민 중에 언론의 막강한 힘이 왕왕 남용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국민 대부분이 대통령의 언론에 대한 불만도 이해한다. 그러나 대통령이 자주 언론을 비난하고 원망하면 국민의 존경과 동정심을 더욱 잃을 뿐이다. 대통령은 스스로 함구하더라도 주위에 대변자가 많다. 그의 참모들까지 언론에 대한 불평을 삼간다면 국민은 청와대를 새롭게 인식하게 될 것이고 대통령에게 불리한 언론보도의 파장은 감소될 것이다.
대통령은 방송이 없었더라면 자신이 대통령이 될 수 없었으리라고 치하했는데, 무시무시한 5공 시절,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목숨 걸고 보도해서 결국 6월 혁명을 이루어낸 신문이 없었더라면 대통령에 출마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 아닌가. 토막기사 하나 때문에 기자가 해고되고 윤전기 정지까지 당하던 시절에 언론이 성고문 사건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못했)음을 탓하려면 그 탄압 속에서 보도한 것에도 점수를 주어야 하지 않는가. 그리고 그가 고마워하고 의지하는 방송과 일부 신문들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나 부천서 성고문 사건을 어떻게 다루었는가.
▼ ‘언론불평’ 반년만 중단해보라 ▼
대통령이 쌍소리를 했다면 언론은 당연히 보도를 해야 한다. 대통령이 정말 믿음직하고 유능한 대통령이라면 쌍소리도 애교로 들릴 수도 있고 국민에게 카타르시스를 줄 수도 있다. 하지만 대통령의 쌍소리에 국민이 혐오감을 느낀다면 대통령은 쌍소리를 해서는 안 된다. 대통령의 언론과의 싸움이 전 세계 코미디언들의 풍자감이 되고 우리 국민을 한숨 쉬게 한다면 대통령은 좋든 싫든 언론과 정전을 해야 한다.
서지문 객원논설위원·고려대 교수·영문학 jimoon@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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