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제조기능이 고장나자 B사는 곧바로 애프터서비스(AS)를 해줬다. 고장이 반복되면서 AS가 되풀이됐다. 결국 B사는 제품의 근본적 결함을 인정하고 새 냉장고로 교체해줬다.
시장에서 제 기능을 못하는 상품은 이처럼 반품된다. 허위 과장광고로 불량품을 판매하고 반품마저 거절하는 회사는 소비자들의 신뢰를 잃고 결국 문을 닫게 된다.
이것이 ‘시장(市場)의 힘’이다.
그렇다면 회사 사장은 반품이 가능할까.
냉장고보다 어렵긴 하지만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사장이 무능해서 경영실적이 형편없다고 하자. 그 회사의 주가는 연일 하락하고 회사채와 기업어음(CP) 금리는 오르게 된다.
주주들은 사장에게 잘못된 행동을 고치도록 요구하고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주주총회를 통해 사장을 쫓아낸다.
사장이 대주주이거나 지분이 소액주주에게 분산돼 있다면 시장의 힘은 다소 약해진다.
그러나 자본시장이 고도로 발달하면서 기업사냥꾼(레이더스)의 적대적 인수합병(M&A)이 기다리고 있다. 기업사냥꾼들은 사장만 바꿔도 기업주가가 오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결국 사냥꾼들은 적대적 인수합병으로 무능한 사장을 교체한다.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고, 일단 배분된 자원이 제 기능을 하도록 강제한다’는 시장원리가 작용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대통령은 과연 ‘시장원리’가 얼마나 작용할까.
대통령은 냉장고처럼 반품이 안 되며 사장처럼 적대적 인수합병에 의한 퇴출도 거의 불가능하다.
대통령이 ‘개구리’든 ‘맹꽁이’든 정치를 엉망으로 한다고 치자.
대통령에 대한 유권자(정치소비자)의 비판여론이 거세게 일면서 대통령의 주가, 즉 지지율이 급격히 떨어진다. 이런 점에서 대통령은 ‘냉장고’와 ‘하느님’의 중간쯤에 있다.
만일 대통령이 비판을 겸허히 수용하고 잘못을 고쳐나간다면 지지율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반드시 오를 것이다. 대통령에게도 시장원리가 어느 정도 작용하는 셈이다.
그런데 대통령이 언론에 대해 소송을 남발하고 전쟁이나 벌이면서 비판 여론을 잠재우는 데 시간을 낭비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나마 정치영역에서 미미하게 작용하던 시장원리는 완전히 실종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대통령이 운 좋게 임기를 마치더라도 역사에 오명(汚名)을 남길 수밖에 없다. 정치소비자들은 반품이 안 되는 대통령에게 실망해서 대통령제 폐지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1972년 ‘일반균형이론’으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케네스 애로 스탠퍼드대 명예교수는 “시장원리는 수요와 공급의 균형은 물론 경제적 효율성(한 사람의 복지를 희생하지 않고선 다른 사람의 복지를 향상시킬 수 없는 최적의 균형)까지 가져온다”는 사실을 이론적으로 입증해 냈다.
애로 교수가 지금의 한국사회를 면밀히 분석한다면 “시장원리가 냉장고는 물론 노동조합과 국회의원, 대통령에게도 철저히 작용해야 ‘2만달러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란 충고를 내놓지 않을까.
임규진 경제부차장 mhjh2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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