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검찰 난기류]<上>건전한 긴장관계서 불신으로

  • 입력 2003년 9월 1일 18시 31분


‘청와대가 추진하려는 검찰 개혁의 진정한 의도는 무엇일까?’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취임 초 검찰에 대한 부당한 간섭을 지양하겠다고 밝히면서 양 측은 ‘건전한’ 긴장관계를 유지하는 듯했으나 이제는 서로를 불신하는 상황으로 반전되고 있다는 게 정치권과 법조계 안팎의 시각이다.

양측의 불신은 기본적으로 대통령과 검찰 수뇌부가 생각하는 ‘검찰의 정치적 또는 수사권 독립’ 등에 대한 시각차에서 비롯됐다는 게 중론이다.

▽청와대의 검찰 불신 배경=노 대통령이 제기한 ‘검찰 견제론’에 대해 청와대는 “말 그대로 ‘견제장치’를 두겠다는 것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는 노 대통령이 취임 직후 평검사들과의 대화에서 밝힌 검찰에 대한 ‘문민통제’와도 일맥상통하는 얘기라는 것이다. 노 대통령의 검찰 개혁 구상은 기본적으로 검찰은 대통령의 인사권을 두려워하고, 대통령은 검찰의 수사권을 두려워하는 상호 견제관계를 지향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청와대측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노 대통령은 검찰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강하고, 그 같은 시각이 현재의 ‘검찰 견제론’에 깔려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노 대통령이 지난달 27일 전남 광양에서 “검찰, 국가정보원, 국세청, 경찰, 이런 부분에 대해서도 참 나도 마음속으로 ‘말 못할 속앓이’를 한다. 그러나 어쩔 수가 없다”고 말한 것도 검찰에 대해 갖고 있는 노 대통령의 심중을 드러낸 게 아니냐는 해석도 있다.

한 측근은 “노 대통령이 대전지법에서 판사로 근무할 때 한 검사가 사건 당사자로부터 받은 돈을 가지고 찾아와 ‘판결할 때 선처해달라’는 부탁을 했으나 이를 거절했다가 한동안 검찰과 불편한 관계였다는 일화를 주변 사람들에게 몇 차례 털어놓은 적이 있다”며 “검찰에 대한 노 대통령의 불신감은 매우 크다”고 전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노 대통령 취임 이후 진행된 정치권을 향한 검찰 수사가 청와대의 의도와 관계없이 움직인 데 대한 불만이 갈등의 원인이 아니냐는 추측도 있다.

쇼핑몰 굿모닝시티 분양비리에 연루된 정대철(鄭大哲) 민주당 대표, 나라종금 퇴출저지 로비의혹과 관련해 불구속 기소된 안희정(安熙正) 민주당 국가전략연구소 부소장 등에 대한 검찰 수사 과정에서 갈등이 싹트지 않았느냐는 분석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또 “청주지검 검사의 몰래카메라 촬영 사건을 두고 검찰 권한에 대한 견제장치가 필요하다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면서 “검찰의 독립을 보장한다는 게 수사권을 맘대로 남용하거나 무소불위의 권한 행사를 허용하라는 뜻은 아니지 않으냐”고 말했다.

그는 이어 “노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민정수석실이 검찰 수사진행 상황에 대한 사전 보고를 일절 받지 않고 있고, 청와대에 있던 검찰 직통전화도 모두 철거하지 않았느냐”면서 “검찰 수사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은 확고하다”고 덧붙였다.

▽검찰 반발=노 대통령의 ‘검찰권 견제’ 발언에 대한 검찰의 반응은 한마디로 ‘도대체 어느 장단에 춤을 추라는 말이냐’는 것이다.

‘권력으로부터 독립해 엄정하게 권력형 비리를 단죄하라’는 대통령의 주문에 따라 열심히 수사했지만 결과는 대통령의 불만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검찰은 표면적으로는 반응을 자제하고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반발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일부 검사들은 “원칙대로 한 것도 문제를 삼느냐”며 격앙된 반응까지 보이고 있다.

송광수(宋光洙) 검찰총장 등 검찰 수뇌부들은 대통령의 발언 등에 대해 일체의 언급을 자제하며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자칫 대통령과 검찰 수뇌부와의 정면충돌로 비칠 수도 있는 점을 경계한 행보로 보인다.

그러나 평검사들은 대통령의 발언에 직접적인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서울지검 한 검사는 “대통령의 발언을 전해 듣고 솔직히 열이 받고 기분이 나빴던 것이 사실”이라며 “검사가 부여받은 직분대로 수사한 것을 놓고 문제를 삼으면 수사를 하지 말라는 것과 같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평검사는 “노 대통령이 올 3월 검사와의 대화에서는 ‘검찰의 독립을 위해 전화도 하지 않겠다’며 검찰 독립과 성역 없는 수사를 강조했었다”며 “이제 와서 왜 검찰을 흔드는 듯한 발언을 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검찰 일각에서는 노 대통령 취임 이후 이전 정권 때보다 엄정하게 진행된 권력형 비리에 대한 검찰 수사에 대해 노 대통령이 불만을 드러낸 것이 아니냐고 보고 있다.

지방 검찰청의 한 부장검사는 “검찰의 독립성 보장이 대통령과 정권의 의도와 배치되는 방향으로 결과가 나온 것에 대한 불만을 말한 것 같다”며 “대통령이 언론을 향해 지켜봐달라고 했듯이 검찰의 자율과 독립을 보장하면서 지켜봐주는 인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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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이태훈기자 jefflee@donga.com

▼康법무-宋총장 '삐걱'▼

강금실(康錦實·왼쪽) 법무부 장관과 송광수(宋光洙) 검찰총장 사이에 미묘한 갈등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현 정부 출범 후 별다른 잡음 없이 호흡을 맞춰왔던 두 사람간의 불협화음은 검찰 감찰권의 법무부 이관 문제에 이견을 보이면서 불거지기 시작했다.

지난달 18일 국무회의에서 강 장관이 “법무부 이관 문제를 가급적 올해 안에 구체화되도록 노력하겠다”고 언급하자 다음 날 아침 송 총장은 출근길에 “감찰권을 검찰이 가지고 있고 그래도 부족하면 법무부가 추가로 가지면 감찰이 더욱 철저해진다”며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송 총장은 “어느 조직이나 감찰권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자기가 간지러우면 가장 먼저 자신이 긁지 않는가”라며 불쾌한 기색까지 내비쳤다.

지난달 22일 단행된 검찰 인사는 두 사람 사이 갈등의 골을 더욱 깊게 했다는 게 법무부와 검찰 안팎의 분석이다.

송 총장은 “서울지검 부장검사들의 이동은 소폭에 그칠 것”이라고 못 박았지만 뚜껑을 연 결과 서울지검 부장 검사 24명 중 9명이 교체됐다. 특히 대검의 일부 과장급 인사조차 송 총장에게 사전에 통보가 되지 않았다는 전언이다.

법무부는 “경향 교류와 보직 순환 원칙 등을 따른 것으로 대검과 충분한 협의를 거쳤다”고 밝혔지만 검찰 주변에서는 “송 총장이 배제됐다”는 뒷말이 나왔다. 강 장관이 인사권을 통해 송 총장을 견제했다는 해석도 나왔다.

강 장관이 감찰권 이양에 대한 적극적인 의지를 표명하고 검찰 인사에 ‘전권’을 휘두르는 것은 현 정부 출범 후 검찰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했다는 청와대와 정치권 일각의 불만에 공감대를 형성해 ‘행동’을 취한 것으로 풀이된다.

현안에 대한 ‘이견’의 수준을 넘어 ‘갈등’으로 비칠 만한 이 같은 일이 있은 후 두 사람은 상반된 행보를 취하고 있다.

강 장관은 지난주 모스크바 방문에서 다시 한번 “감찰제도가 바뀌어야 한다”는 소신을 피력했다. 반면 그동안 현안에 대해 의견 표명을 해 오던 송 총장은 기자들의 공세에 입을 굳게 닫고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황진영기자 bud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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