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 사회의 문화를 우리네 사는 모습과 비교하기도 하고 개미 기업의 경영을 인간의 경제활동에 비춰보기도 한다. 개미 사회는 워낙 복잡하고 조직적이라 문화 경제 심지어는 정치까지 인간 사회와 비교해 분석해볼 수 있다.
내가 기업인들을 상대로 강연을 할 때마다 특별히 자주 받는 질문이 있다. 개미의 근면함에 관한 질문이다. “개미는 흔히 매우 부지런한 동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면서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개미는 근면함의 대명사로 각인되어 있다. 어렸을 때부터 우리는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로 세뇌를 받으며 자랐다. 솔로몬왕은 잠언에서 우리더러 개미의 근면함을 배우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하지만 개미는 우리 인간만큼 부지런하지 않다. 어떤 면에서는 베짱이만큼 열심히 일하는 것도 아니다. 베짱이 수컷은 성충으로 사는 얼마 안 되는 여름 동안 암컷의 마음에 들어 자신의 유전자를 후세에 남길 기회를 얻기 위해 식음을 전폐하고 노래를 부른다. 놀고먹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게 베짱이에게는 일이다.
개미가 근면해 보이는 이유는 우리 눈에 띄는 개미들이 죄다 바삐 움직여 다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개미굴 속으로 들어가 보면 거의 대부분의 개미들은 그야말로 몸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실제로 측정해보면 일개미들의 70∼80%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우리 눈에는 일하는 나머지 20∼30%만 보이기 때문에 개미들이 언제나 일만 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꼼짝 않고 가만히 앉아 있는 일개미들이 그저 빈둥빈둥 놀고먹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출동 명령을 기다리는 이른바 대기조들이다. 오랜 진화의 역사를 통해 개미 사회는 전체 노동력의 무려 4분의 3을 위기관리에 할당하고 나머지 4분의 1로만 사회를 운영하게 되었다. 사뭇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개미 사회의 경영전략에 개미학자들도 오랫동안 뒤통수를 긁적였다.
작년 여름 동해안에 쏟아진 폭우를 기억하고 있을 줄 안다. 수마가 할퀴고 간 상처를 어루만져주기 위해 전국에서 달려온 사랑의 손길들도 잊지 못할 것이다. 그때 복구현장으로 달려온 자원봉사자들은 모두 직장이 없어 집에서 놀고 있던 사람들이 아니었다. 생업을 멈추고 달려온 이들이었다. 만일 우리 사회에 그 같은 천재지변이 지금보다 훨씬 빈번하게 일어난다고 가정해보자. 사회가 제대로 굴러갈 리 없을 것이다.
요즘 우리 사회는 천재지변에 버금가는 대형 시위와 파업들로 절뚝거리고 있다. 뉴욕의 지하철 노조는 자정이 지나 시민들의 발걸음이 뜸해진 후에야 조용히 시위를 한다고 들었다. 자신들이 내건 파업시한 조건을 준수하려는 준법정신과 파업으로 인한 선량한 시민들의 피해를 줄이려는 배려 때문이다. 그에 비하면 요즘 우리나라의 파업들은 나라의 운명마저 뒤흔들 지경이다. 지금까지는 정부가 용케 무마해왔지만 앞으로 더욱 첩첩산중일 것임은 삼척동자도 아는 일이다. 노무현 정부가 그 출범과 함께 내건 ‘동북아물류중심국가’ 기획은 누가 봐도 바람직한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노사관계로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나는 이 시점에서 개미들의 위기관리체제를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개미 사회에는 크고 작은 사고들이 끊이질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엄청난 노동력을 대기상태에 묶어두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사회 전체로 볼 때 더 이득이기 때문이다. 당장 이윤을 남겨야 하는 기업이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엄청난 양의 노동력을 비축할 수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국가는 할 수 있어야 하고 이제는 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우리는 이미 국가 안보 위기상황에 대비하여 군대를 갖추고 있다. 사회안정과 경제균형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힐 수 있는 심각한 사태에 대비하여 언제든지 어떤 일이건 해낼 수 있는 또 하나의 ‘군대’를 양성할 것을 제안한다. 선진국들도 미처 채택하지 않은 정책이라고 두려워할 것 없다. 물류중심국으로서 외국기업들에 내놓을 수 있는 최소한의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최재천 서울대 교수·생물학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