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앞둔 사람들의 얼굴도 그리 밝지 못했다. 칠월의 31일 중 24일인가가 비가 내렸고 팔월에도 마찬가지로 이십 며칠인가가 비가 내려서 논농사는 말할 것도 없고 햇볕을 보지 못한 고추를 비롯한 밭곡식들도 제대로 여물지 못했다.
▼ 비판보다 더 무서운 건 무관심 ▼
추석 무렵의 들판을 보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새겨지곤 했는데 올해 상황하고는 영 상관없는 말인 것 같다.
추석 무렵의 형편이 밝지 않은 것은 비단 농촌만은 아니다. 도시 재래시장의 상인들은 아예 물건을 팔 생각을 안 하고 낮술을 마시거나 한숨을 푹푹 쉬며 장기를 둔다. 이렇게 장사가 안 되기는 처음이라고 한다. 시장이 들썩이고 사람들이 번다하게 왔다 갔다 하며 물건값을 흥정하고 해야 명절 기분이 나는 법인데 너무나 조용해서 민망할 지경이라고 한다.
신문을 보면 또 어떠한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니 어느 시절이나 사회의 갈등과 분쟁은 끊이지 않게 되어 있지만 요새는 모든 조직이 각자 자기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는 한 치의 양보도 없을 뿐 아니라 여의치 않으면 폭력을 쓰거나 비상식적인 시위를 한다.
게다가 알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 모르는 특징을 저마다의 문제가 지니고 있다. “잘한 것이든 잘못한 것이든 이것이라고 지목할 수조차 없이, 저래서 어쩌자는 것일까” 싶지 않은 일들이 없다.
새 정부가 들어서고 해결해야 할 현안이 산더미 같을 텐데도 정치인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신당이니 어쩌니 하면서 싸우기만 하더니 급기야는 멱살을 잡고 물을 끼얹고 하는, 어처구니없는 모습까지 보여준다.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뒤로 국민이 가진 기대는 기존의 정치판하고는 무엇이 달라도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기대와 설렘이 사그라지고 관심을 가져봐야 머리만 아프다는 생각이 들어 웬만하면 “왜 저러지?” 하면서 피하게 된다. 비판보다 무서운 건 무관심이다.
이런 속에서도 한가위는 또 찾아왔다. 한가위 풍속이 많이 달라졌다고 해도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귀향길에 오를 것이고 사람이 사는지 어쩐지 모를 정도로 정적에 놓여 있던 시골마을도 오랜만에 고향을 찾은 사람들로 북적일 것이다.
명절 때마다 증후군을 앓을 정도로 명절을 맞이하는 게 두렵다는 여자들은 또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음식을 장만하고 차례상을 보고 다 함께 모여 산소를 찾을 것이다. 세월 따라 사는 모습이 달라져도 우리나라 명절 때 보면 핏줄의 힘이 얼마나 질기고 강한지 새삼스럽게 깨닫곤 한다. 가족이라고 갈등이 없겠는가. 오히려 가족간의 갈등은 구체적이고 실질적이어서 더 복잡하며 사소한 것에도 더 마음이 상하는 법이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조금만 서로 마음을 써주어도 포근해지고 위로를 받게 된다.
▼ 다른 사람 얘기 들어주다 오자 ▼
이번 명절에는 사람들이 모여서 대화를 나눌 때 부디 자기 의견을 내세우는 데 집중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의견에 귀 기울이는 그런 시간으로 삼았으면 좋겠다. 토론이나 논쟁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그것이 항상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어설픈 정치적 주제나 사회적 쟁점으로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 사이에 또 편이 그어지고 말꼬리 붙잡기식 대화가 이어지는 민망한 광경이 한가위 둥근 달 아래에서만은 좀 덜 일어났으면 싶다.
자기 주장보다는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들어주는 자리가 됨으로써 여자와 남자, 아들과 아버지, 며느리와 시어머니 등등이 서로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그런 명절이 되기를 희망해본다.
그래서 작금의 사회문제와 정치 상황에 끼어 조직생활을 하느라 그러잖아도 안개 속에 서 있는 것처럼 여겨질 수많은 사람들이 귀향길에서 새로운 전망을 보고 돌아왔으면 한다.
신경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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