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을 마치고 신당창당에 참여하시겠다는 결정을 뉴스를 통해 들었습니다.
어려운 결정을 내리셨겠지만 저로서는 무척이나 안타깝습니다.
선배님과 저는 민주화의 한 길을 걸었고, 지난 대선에서는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단일화를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지금도 마땅히 선배님과 함께 해야겠지만 그날 단식 농성장에서 말씀드렸듯이 저는 지금의 분당사태를 막을 수만 있다면 온몸을 던져서라도 막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차선은 없습니다. "신당이냐? 잔류냐?"는 차선조차도 될 수 없습니다. 분당은 개혁, 평화, 민주 세력의 분열일 뿐이고 분열은 우리 모두의 패배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오직 '분당없는 통합신당"이라는 최선만이 존재합니다. 차선도 없이 최선만이 존재하는 현 상황에서 제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 뿐입니다. 최후까지 통합을 위해 저의 모든 노력을 다하는 것 그 이외에는 없습니다.
선배님! 저는 선배님이 함께 하시는 신당이 성공하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도대체 왜 탈당과 분당을 하면서까지 신당을 창당해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는 구주류와의 결별, 당무회의의 난투극.
이것이 분당의 명분이 될 수는 없습니다.
선배님은 말씀하셨죠? 그럼 어떻게 하느냐고...
그러나 저는 그 이유만으로 탈당과 분당을 정당화시켜줄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신당을 하고자 한다면 그 이유와 목표가 명확해야합니다.
그것을 국민들이 납득하고 이해해야합니다.
그런데 개혁을 추구한다는 신당이 민주·개혁세력의 분열로부터 출발하고 있습니다.
신당의 첫걸음이 탈당과 분당으로부터 시작되고 있습니다.
이는 이 나라 민주화의 긴 노정을 이어온 민주당을 반으로 쪼개고, 지지자들의 분열을 초래하고, 지역을 갈갈이 찢어놓게 될 것입니다.
신당이 하는 어떤 성과도 이런 역사의 과오를 상쇄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내년 총선에서 의석을 더 많이 얻고 얼마간 새로운 정치개혁을 할 수 있다 하더라도 이 나라 민주개혁세력을 분열시킨 역사적 과오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입니다.
저는 지금으로는 분당을 막는 것이 최선의 개혁이라고 생각합니다. 분당을 하면서 탈당을 하면서 개혁을 말할 자격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분열된 민주당을 통합할 수 있는 한 올의 희망이라도 남아 있다면 그 희망에 저의 정치생명을 걸겠습니다.
존경하는 선배님!
탈당을 결행한 분들과 저와의 사이에는 적지 않은 인식의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DJ와 '국민의 정부'에 대한 평가 즉, 역사적 자리 매김을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있어 생각이 다른 것 같습니다.
물론 DJ에게도 많은 과오가 있습니다. 그러나 공이 1이요 과가 2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는 공을 계승하고 과를 극복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저는 '국민의 정부'의 잘못 가운데 상당 부분은 제게도 그 책임이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지난 시절의 과오와 비판을 오직 동교동계 소위 구파의 탓으로만 돌리느냐? 아니면 저와 우리의 문제로까지 생각하느냐? 에서 큰 시각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덧붙여 우리당의 구주류를 보는 시각에도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들에게 많은 잘못이 있다 하더라도 비판할 것은 비판하면서 우리는 애정과 사랑으로 이들을 포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분명 그들의 헌신과 희생이 없었더라면 이 나라의 민주화와 정권교체가 있었겠는가를 뒤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둘째, 노 대통령과 참여정부에 대해서도 다른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선 노무현 정부의 실패는 분명 우리 모두의 불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성공의 전망이 불투명해 지고 있습니다.
저는 노무현 대통령의 후보시절부터 소위 "뺄셈의 정치"가 아니라"덧셈의 정치"를 해야한다고 강조해 왔습니다. 통합의 리더십과 대선 과정에서 약속한대로 국민화합을 추구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난 몇 개월 동안 대통령과 정부는 통합이 아니라 곳곳에서 갈등을 양산해왔습니다.
국민들의 눈에서 볼 때 이번 분당사태의 최대 책임자는 누가 뭐라 해도 노무현 대통령이 될 것입니다. 노 대통령의 양해와 판단 없이 신당이 추진된다고 믿는 국민은 없을 것입니다.
그분께서 지난 대선의 앙금을 털어내지 못하고 용서하고 포용하지 못한 결과가 오늘의 분당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국민들이 믿게 될 것이 두렵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신당도 참여정부도 성공을 기약 할 수 없습니다.
셋째, 민주당을 어떻게 볼 것인가? 즉 지역당으로만 볼 것인가에 대해서도 인식을 달리 하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 문제는 오랜 역사성과 아픈 상처를 가진 문제입니다.
그런데 이번 분당사태로 우리는 이 아픈 상처를 다시 들춰내는 기막힌 현실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호남인들이 영남대통령을 뽑아 지역주의를 극복하려고 한 것이 잘못이란 말입니까? 노 대통령은 영남인들에게 이런 호남의 노력과 희생을 설명하면서 이제 영남인들도 지역감정을 풀고 도와달라는 호소를 정공으로 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전국정당은 노무현 대통령이 개혁으로, 지역감정을 완화하기 위한 정치와 정책으로 종합적이고도 세심한 장기적이고도 역사적인 노력으로 이루어야할 과제였습니다. 이념정당의 출현과 남북문제의 진전 그리고 예산과 인사의 탕평 등을 통해 이룩했어야 했습니다.
호남당을 남겨 두고 신당을 창당해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호남 유권자가 영남후보를 세우고 압도적으로 성원한 결과가 분당이라면 이것을 배신이라고 생각하는 국민이 왜 나오지 않겠습니까?
왜 지역주의의 극복을 결과적으로 호남을 고립시켜 영남을 얻는 방법을 선택해야 한단 말입니까? 저는 이미 이것을 잘못된 것으로, "신지역주의"라고 이름 붙인 바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총선의 전 과정에서 이 문제를 다시 들춰내는 최악의 상황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넷째, 지난 대선에 대한 평가를 달리하고 있습니다. 선배님의 말씀처럼 지난 대선의 일차적인 승리의 동인은 한나라당을 냉전, 수구, 기득권, 패권 세력으로 규정하고 그에 반대하는 세력을 하나 묶는 단일화에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러한 승리의 7할에서 8할은 민주당 지지자로부터 왔습니다.
그런데 신주류는 지난 대선이 민주당의 승리가 아니라 노무현의 승리라고 규정했습니다.
저는 지난 대선은 민주당의 승리이자 국민의 승리로, 최소한 민주당만의 승리는 아니었다는 것이 올바른 평가라고 생각합니다.
다섯째, 대통령이 나올 때마다 신당이 생기고 탈당과 분당을 밥먹듯이 하는 정치풍토는 이제 끝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어제 목욕탕에서 만난 어느 시민이 말하더군요.
경제는 어렵고 서민들의 죽음이 줄을 잇고 있는데 집권당이 국민에게 희망을 주기는커녕 서로 나뉘어 싸우고 있으니 다음 총선에 보자고 말입니다.
오늘의 신주류도 4년 후에는 구주류가 될 것입니다. 4년 후에도 새로 정당을 만들고 분열과 반목을 계속하지 말란 법이 어디 있겠습니까?
김근태 선배님!
생각하면 참 기막힌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선배님과 제가 어떻게 함께 하지 못하고 이런 글을 주고받는 일이 벌어진단 말입니까?
저는 며칠 전 평양을 다녀오면서 이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정치생명을 걸고 그 길을 선배님과 함께 걸어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돌아오자마자 이런 기막힌 일을 겪게 되었습니다
선배님! 우리는 민주화의 한길에서 하나였듯이 평화의 길에서 하나가 될 겁니다. 건강하십시오.
2003년 9월 8일, 후배 김영환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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