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北 무력시위는 없었지만

  • 입력 2003년 9월 9일 16시 22분


어제 북한의 정권 수립 55주년을 맞아 한반도에 긴장이 감돌았던 것은 현재 상황이 얼마나 취약한가를 보여준 단적인 예이다.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들은 우려 속에 북한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했다. 북한이 전날까지의 위협적인 발언에도 불구하고 무력시위를 벌이지 않아 다행이다. 만약 북한이 신형 첨단무기를 동원해 대규모 무력시위를 벌였다면 6자회담으로 조성되어 가던 대화 분위기는 다시 한번 난관에 부닥쳤을 게 분명하다.

북한으로서는 올해가 소위 ‘꺾어지는 해’인 데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집권 2기라는 점에서 힘을 과시하고 싶은 유혹을 느꼈을 수 있다. 결과적으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은 북한도 현재의 위기를 대화로 풀어야 한다는 국제사회의 공감대를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판단된다.

북한이 정권수립 기념일에 보여준 자세는 특히 미국에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은 엊그제도 콜린 파월 국무장관이 “2차 6자회담에 앞서 북한이 받아들일 수 있는 안전보장 방안을 결정할 것”이라고 밝히는 등 북한에 한층 유화적인 자세로 나오고 있다. 북한의 태도에 따라서는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이 본격 궤도를 탈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사거리 4000km에 달하는 신형 중거리 미사일을 개발했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는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 북한이 핵탄두를 운반할 수 있는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다면 앞으로의 핵 협상은 그만큼 어려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외부 원조로 연명해온 북한 정권이 주민을 먹여 살리는 일은 뒷전에 두고 미사일 개발에 몰두했다는 것을 입증한다는 점에서 북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더욱 강화될 수밖에 없다.

북한이 현재의 상황을 더 이상 악화시키지만 않는다면 6자회담이 재개될 가능성은 크다. 세계의 반대를 무릅쓰고 핵과 미사일을 개발해온 북한이 모처럼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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