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자협회 회장단이 8일 미국 뉴욕 맨해튼 12번가에 있는 국제적인 언론인 보호단체 CPJ(Committee to Protect Journalists)를 방문했을 때 아시아지역 담당자 애비 라이트는 대뜸 이 말부터 꺼냈다. CPJ는 1982년 창립 이후 제3세계 국가를 취재하다 구속되거나 다친 기자를 돕는 활동을 주로 펼쳐 온 민간 언론단체.
라이트씨는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등의 언론인 탄압에 관심을 갖고 그동안 아프리카의 모잠비크 등 여러 곳을 진상 조사차 방문하기도 했다. 그는 최근에는 방글라데시 방문을 신청했으나 입국 허가가 나지 않아 가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 라이트씨가 만나자마자 “노 대통령이 한국 신문사들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낸 이유를 알고 싶다”고 질문을 던졌을 때 우리 일행은 우선 ‘나라 망신’이라는 생각에 “우리가 물을 게 많다”며 일단 화제를 다른 쪽으로 돌렸다.
그러나 한동안 질문에 성심껏 답하던 라이트씨는 파란 눈을 반짝이며 자신의 질문에 대한 답을 거듭 재촉했다. 피해갈 수 없다고 생각한 우리 일행은 개략적인 설명을 해 준 뒤 한국의 언론 상황에 깊은 관심을 보이는 이유를 되물었다.
그의 답은 간단했다. “당신들이 방문한다고 해서 자료를 구해 봤다”는 것이었다.
CPJ측은 면담 도중 올해 발간한 ‘2002년 언론탄압 백서(Attacks on the Press in 2002)’를 우리 일행에게 나눠주었다. 그 책자(186∼187쪽)에는 김대중(金大中) 정부 당시 언론사에 대한 세무조사가 ‘정치적 동기’에서 시작돼 논란을 빚었다는 내용 등 2001년부터 2002년까지의 개략적인 한국 언론 상황도 포함돼 있었다.
자리가 끝날 무렵 기자가 라이트씨에게 ‘현직 대통령이 언론사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낸 예를 아느냐’고 묻자 그는 한참 머리를 갸웃거리더니 “몇십년 전에는 몰라도 들어본 일이 없다”고 답했다. 그는 이 말끝에 “CPJ는 소송을 당해 곤경에 처한 언론인을 돕는 활동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와의 2시간여에 걸친 면담을 끝내면서 기자의 머리를 스친 것은 이제 한국정부와 언론간의 관계가 ‘우리끼리’의 내부 갈등이 아니라 ‘국제적 관심사’가 됐다는 점이었다.
세계 언론사상 별 유례가 없는 ‘대통령의 언론기관 상대 소송’이 이제 CPJ 같은 단체의 내년 언론탄압백서에 소송 진행 과정까지 곁들여져 상세히 소개될 것이란 생각을 하니 정부가 밉기보다 우리가 다함께 망신을 당하는 게 아니냐는 걱정이 앞섰다.
최영훈기자 tao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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