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 통수권자로서 이번 문제의 결정권자인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신중한 판단’을 강조하면서 가부간 입장을 정하지 않고 있는 가운데 청와대와 정부 내에서조차 찬반양론이 대립하는 등 가닥이 잡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번 파병문제 역시 3월 비전투병 파병 논의 때와 마찬가지로 심각한 국론 분열의 후유증을 앓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노심(盧心)은 어디에 있나=노 대통령은 17일 광주 전남지역 언론과의 합동회견에서 “서둘러 판단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거듭 강조했다. “정말 골치가 아프다. 어느 쪽으로 결정을 하더라도 정말 나라가 시끄러울 것이다”며 이번 사안에 대한 입장 정리가 쉽지 않음을 토로하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국민여론, 국가이익, 유엔의 태도 등 끝까지 판단해야 할 상황이 많다”며 모든 변수를 고려하겠다고 밝혔으나 향후 국론을 어떻게 모아갈 것인지에 대한 분명한 일정과 절차를 내놓지는 않았다.
이에 따라 자칫하면 이번 사안의 결정 과정 역시 또 다른 국정운영의 혼선으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비록 외부 변수와 국내정치 및 사회 경제적 요소까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사안이기는 하지만 4일 미국측의 파병 요청 이후 미국측과 보다 깊이 있는 의견 조율조차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 파병문제의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그래서 정부 차원에서 중심을 잡고 구체적인 대책을 착착 세워나가기는커녕 전체적인 상황 파악부터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는 것이다.
▽청와대 내의 혼선=이번 파병 문제를 놓고 청와대 내의 외교안보 라인 쪽은 대체로 파병이 국익에 부합한다는 쪽에 기울어 있었다. 일부 참모들은 파병의 정당성과 조기 파병 결정을 주장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일부 젊은 참모들 사이에서는 “파병 쪽으로 분위기를 몰아가려는 것 아니냐. 그 쪽에서 나오는 얘기에 너무 경도돼서는 안 된다”며 견제 움직임도 엿보였다. 유인태(柳寅泰)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의 “전투병 파병은 곤란하다”는 16일 발언 역시 그러한 과정에서 작심하고 총대를 메고 나선 것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유 수석비서관의 발언에 대해 청와대는 “노 대통령의 뜻과는 무관하며 내부에 여러 다양한 견해가 있다는 점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었다”고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유 수석비서관의 발언을 놓고도 부적절한 것이었다는 시각과 파병론 쪽으로 치우치던 분위기를 ‘균형 있게’ 바로잡은 것 아니냐는 시각이 서로 엇갈렸다.
▽곤혹스러운 외교부, 국방부=이번 파병 문제의 주무 부처인 외교통상부와 국방부는 유 수석비서관의 발언이 불거지면서 매우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외교부 관계자는 “파병 문제에 대한 국내적 찬반논란이 시작되면서 방향이 중구난방이 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정부도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고 곤혹스러워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유 수석비서관의 발언에 대해 “미국에 등 돌린 나라들도 이렇게 하지는 않는데 비(非)외교적인 발언이 나오는 바람에 미국과의 조율 과정에서 우리 정부의 입지가 어려워지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고 우려했다.
내부적으로 파병 쪽에 기울어 있던 군 내부에서도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특히 노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측이 과거와 달리 한국 정부의 본심(本心)을 의심하는 시각을 비치는 바람에 주한미군 재배치 문제 등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곤욕을 치렀던 국방부는 또다시 그 같은 사태가 재연되는 것 아니냐고 걱정하는 분위기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김영식기자 spear@donga.com
윤상호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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