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외교정책을 진두지휘한 매들린 올브라이트(66)의 회고록 ‘마담 세크리터리(Madam Secretary)’가 16일 출간됐다.
그는 이 책에서 ‘은둔의 왕국 내부’라는 제목의 한 장(章)을 할애해 북한 방문기, 빌 클린턴 정부의 대북 정책 등 북한 관련 내용을 상세히 다뤘다.
그는 클린턴 전 대통령이 임기 말 평양을 방문하려 했으나 중동 사태가 급박해 이뤄지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또 미국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직접 대화하는 것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고 향후 대북 정책의 원칙을 제시했다.
올브라이트 전 장관은 체코 태생으로 부모와 함께 어릴 때 미국으로 이민해 유엔대사를 거쳐 1997년 1월 국무장관에 올랐다.
다음은 내용 요지.》
▽클린턴 방북 무산 경위=2000년 10월 평양을 다녀온 후 북한과 협상이 이뤄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클린턴 대통령이 북한 방문을 원했고 김대중 대통령도 클린턴 대통령의 평양행을 강력히 촉구했다.
북한은 위성통신 발사를 도와주고 북한의 안전을 보장하는 조건으로 미사일 개발과 실험, 수출 등을 중단할 수 있다고 밝혔으며 미국은 이를 받아들일 생각이었다. 북한이 무엇보다도 미국과의 관계정상화를 원한다는 점은 최대의 지렛대였다.
그러나 북한과의 협상이 미국의 국가미사일방어(NMD)체제 구축의 명분을 약화시킬 것을 우려해 정상회담을 반대하는 의원들이 많았고, (임기 말이어서) 우리는 시간이 너무 없었다.
클린턴 대통령은 2000년 대선에서 당선된 조지 W 부시 후보에게 “평양과의 정상회담을 반대하느냐”고 물었다. 부시 당선자는 “그것은 클린턴 대통령의 결정이었으며 우리는 한번에 한명 만의 최고 행정책임자를 갖는다”고 대답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중동사태가 급박하게 돌아가자 방북과 중동 평화 중재 노력 사이에서 고민하다 김 위원장에게 미국을 방문해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북한이 (국제 외교 관례에 어긋나는) 이 제안을 거절한 것은 놀라운 게 아니지만 불행한 일이었다.
▽북한, 미사일 중단 용의 밝혀=방북 이틀째에 미사일과 관련한 질문 사항을 줬더니 김 위원장이 즉석에서 답변했다. 김 위원장은 △보상이 따른다면 미사일 수출 금지가 새 계약은 물론 기존의 계약까지 적용되고 △수출 금지 대상에는 미사일 관련 물질, 훈련, 기술이 모두 포함되며 △남한이 가입한다면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에 북한도 가입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시리아와 이란에 미사일을 판매하는 것은 외화가 절박하게 필요하기 때문이며 보상이 있다면 중단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대형 스타디움에서 북한 주민들이 대포동 미사일 발사 장면을 연출하자 김 위원장은 “발사 실험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이라고 말해 상당히 고무됐다.
▽김정일의 개방 모델=“김 위원장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아는 지적(知的)인 인물”이라고 한 김대중 대통령의 견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김 위원장은 경제가 악순환에 빠졌다고 인정하고 석탄과 전력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내가 개방의 필요성을 말하자 김 위원장은 시장 경제와 사회주의를 혼합한 중국식 개방에는 관심이 없으며, 사회주의에 기반을 둔 스웨덴 모델이나 전통을 고수하며 시장 경제를 유지하는 태국 모델에 흥미가 있다고 답했다.
김 위원장은 북한에 컴퓨터가 얼마나 있느냐는 질문에 “수십만대이며 나도 3대를 갖고 있다”고 답했으며 미 국무부의 웹사이트 주소를 묻기도 했다. 또 “자신의 통역이 김대중 대통령의 통역만큼 훌륭하냐”고 묻기에 “김 대통령은 최고의 통역을 대동하고 있으며 당신의 통역도 마찬가지”라고 말해주었다.
또 김 위원장은 냉전 이후 주한 미군에 대한 태도가 바뀌었다며 주한 미군은 안정 세력의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주한 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북한과 남한에 모두 있다며 해결책은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올브라이트가 제시하는 대북 접근의 4가지 원칙=현재의 북핵 상황은 1994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첫째, 대북정책의 귀결은 ‘입증 가능한 비핵 한반도’여야 하고 북한의 핵 보유를 용인할 수 없다. 둘째, 보상 차원이 아니라 핵 확산과 전쟁 위험을 방지하는 데 필요한 수단으로서 미국이 북한과 직접 대화할 용의를 가져야 한다. 셋째, 동맹국들과의 전면적인 조정 속에서 대북 정책이 이행돼야 한다. 그리고 대북정책은 긴급히 이행돼야 한다.
워싱턴=권순택특파원 maypo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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