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병파병' 청와대 기류]‘對美관계’ 거론안해 미묘한 여운

  • 입력 2003년 9월 18일 18시 27분


나종일 국가안보보좌관(왼쪽에서 두번째)이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 남북대화사무국에서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나종일 국가안보보좌관(왼쪽에서 두번째)이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 남북대화사무국에서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이라크 전투병 파병 문제로 고심하고 있는 청와대 내의 기류에 미묘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3월 비전투병 파병 때와는 달리 ‘미국과의 동맹관계’가 파병의 절대적이고 최우선적인 고려 요소는 아니라는 기류가 강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반전(反轉)은 무엇보다 신중한 판단을 거듭 강조하고 있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태도에서부터 손에 잡힐 듯 느껴진다.

노 대통령은 18일 광주 전남지역 언론사와의 회견에서 파병 문제의 고려 요소로 △국민의 인식 △국가적 이익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 또는 전 세계 국민에 대한 한국의 이미지 △향후 아랍권과의 관계 등 네 가지를 들었다. 정부 내의 파병 찬성론자들이 제기하고 있는 한미동맹 문제는 전혀 거론하지 않았다.

나종일(羅鍾一) 대통령국가안보보좌관도 18일 “우리의 국익과 안보도 중요하지만 파병이 이라크 국민에게 어떤 이득을 주느냐는 점도 중요한 고려사항이다”고 말해 향후 주권을 회복하게 될 이라크와의 관계에도 상당한 강조점을 두었다.

이 같은 청와대의 기류는 3월 비전투병 파병을 결정했을 당시 노 대통령이 “한미동맹 관계의 중요성 등 여러 요소를 감안해 미국의 노력을 지지해 나가는 게 국익에 가장 부합한다”고 밝힌 것과는 사뭇 다른 것이다. 이는 3월 당시의 ‘동맹국인 미국을 지지한다’는 것만으로는 이번 파병의 명분을 세울 수 없다는 판단이 깔려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처럼 청와대가 상대적으로 대미관계보다는 국제사회의 위상이나 이라크를 포함한 아랍권과의 향후 관계를 주요 고려 요소로 꼽고 있는 데에는 이번 파병이 그 어느 때보다 명분과 형식이 중요하다는 점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관계자는 “이번 파병은 전투병을 보내달라는 것이기 때문에 자칫 국제사회에서 호전적인 국가로 비칠 수도 있다”며 “미국을 돕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라크 문제가 해결된 이후 다른 중동국가와의 관계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청와대는 유엔의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청와대와 NSC 관계자들이 “앞으로 2주일 정도가 지나야 파병 여부의 가닥이 잡힐 것이다. 그 이전에는 어떤 결론도 나오기 힘들다”고 밝히고 있는 것도 유엔 결의가 어떤 식으로 결론 나느냐가 파병 문제의 최대 고비가 될 것임을 시사하는 것이다.

청와대가 ‘미국 변수’를 가급적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있는 것에는 정치적인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즉 내년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미국에 비판적이면서 파병 반대 의견이 우세한 노 대통령 지지층의 이탈을 최소화하겠다는 것이 이번 파병 문제의 해법을 구하는 과정에서 주요 고려 사항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해외 파병의 형태▼

한국이 미국의 요청을 수용해 이라크에 추가로 전투병을 파병할 경우 그 형태는 다국적군(MNF)과 유엔평화유지군(PKF) 중 하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다국적군(MNF:Multi National Force)은 2개국 이상의 군대가 공통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같은 지역기구나 특정 국가를 중심으로 결성하는 군대이다.

유엔헌장 51조는 ‘회원국에 대한 무력공격 발생시 안전보장이사회의 무력사용 허용 결의에 따라 집단적 자위권을 갖는 병력’을 다국적군으로 정의하고 있다.

따라서 다국적군은 통상 유엔안보리의 결의안을 거쳐 관련 임무를 수행하지만 유엔의 관리 감독을 받지는 않는다. 이라크전 처럼 유엔의 결의 없이 특정국의 주도로 구성된 다국적군은 그 정당성이 논란이 되기도 한다.

다국적군 사령관은 대개 주도국 군 장성이 맡는다. 1999년 동티모르에 다국적군의 일원으로 파병된 상록수부대도 주도국인 호주군 사령관의 지휘를 받았다.

주도국 위주의 강력한 지휘체계와 원활한 군수지원으로 신속하고 효율적인 임무수행이 가능하다는 것이 다국적군의 장점이다. 파병비용은 유엔의 승인 여부와 상관없이 참가 국가가 전액 부담한다.

유엔평화유지군(PKF:Peace Keeping Force)은 유엔안보리의 결의를 거쳐 유엔의 주도로 구성된 부대로서 전후 평화유지가 주임무이다.

유엔이 부대편성과 지휘체계, 근무지원 등 모든 파병사항을 관리 감독하며 총사령관도 유엔사무총장의 승인을 거쳐 임명된다. 또 사무총장의 위임을 받은 유엔 특별대표(SRSG)가 파병지역의 평화유지군뿐만 아니라 경찰 구호단체 등을 총관리한다.

다국적군보다 많은 국가가 참가하지만 상대적으로 지휘구조가 느슨하고 경비는 유엔이 모두 부담한다.

미국은 이라크에서 현재 유엔안보리 결의안을 거친 미국 주도의 다국적군을 적극 추진 중이다.

한편 유엔군은 유엔헌장에 따라 회원국의 무력침공에 맞서 전투를 위해 창설하는 부대로 유엔 창설 이후 6·25전쟁이 유일한 전례로 남아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6·25전쟁 당시 유엔군은 유엔안보리에서 ‘유엔군’ 명칭과 유엔기를 사용토록 결의한 것일 뿐”이라며 “따라서 유엔헌장의 규정에 의거한 정식 유엔군이라기보다는 미국 주도의 다국적군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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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호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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