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건식(趙建植) 통일부 차관은 19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소속 의원실을 돌아다니며 정부의 금강산 관광 사업 경비 지원금 200억원을 승인해 줄 것을 부탁하면서 김윤규(金潤圭) 현대아산 사장 명의의 이런 확인서를 보여줬다.
이 확인서는 “정부 지원금은 관광객이 지불하는 관광 요금과 별도로 계리(計理)하고 관광객들의 이동, 숙식 등 제반 관광경비를 충당하는 데에만 사용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는 ‘국민 혈세(血稅)가 북측에 직접 제공되는 것은 아니며, 따라서 북한의 핵 개발 자금 등으로 유용되는 일도 없을 것’임을 강조하기 위해 작성한 것으로 보였다. 지난해 국회 통외통위가 북한 핵 위기를 이유로 금강산 관광 사업의 지원금 200억원에 대한 집행 보류 결정을 내린 것을 고려해 나름대로 국회를 설득하기 위한 조치였던 셈이다.
그러나 정부의 이런 ‘노력’은 “눈 가리고 아웅”이라는 싸늘한 반응에 부닥쳐 기대했던 ‘효과’를 거두진 못했다.
한나라당 유흥수(柳興洙) 의원은 “남북교류협력에 기여하는 금강산 관광 사업의 상징성은 인정한다”며 “그러나 정부가 국민의 세금으로 사기업인 현대에 거액의 지원금을 줄 때는 정확하고 솔직한 정보를 제공한 뒤 ‘국민적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한 의원 보좌관은 “조 차관에게 ‘현대상선이 북한에 지불하는 관광 대가는 관광객 1인당 얼마(50∼100달러)로 계산된다. 정부의 지원금이 현대상선으로 들어가면, 결국 그 돈이 그 돈 아니냐’고 따졌더니, 아무 대답도 못 하더라”고 전했다.
사실 정부의 금강산 관광 경비 지원금은 국회의 승인 없이 집행해도 법적으론 아무 문제가 없다. 의결 사항이 아니라 보고 사항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정부가 국회의 동의를 얻기 위해 ‘애쓰는’ 것은 김대중(金大中) 정부의 햇볕정책과 달리 대북정책을 국민적 합의 아래 추진하는 모습을 취하기 위해서이다.
그렇다면 대북정책의 투명성에 대한 그런 의지를 제대로 평가받을 생각에서 ‘이상한’ 확인서를 동원하는 것보다는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감안해 도와 달라’고 솔직히 호소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태풍 피해 때문에 대북 지원금을 승인해 달라는 게 송구스럽다. 그러나 남북협력기금을 수해 복구비로 쓸 수는 없지 않습니까.” 16일 국회 통외통위에서 정세현(丁世鉉) 통일부 장관이 했던 말이 더 당당하게 들렸다.
부형권 정치부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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