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포커스]北 20여차례 방북한 이일하 굿네이버스 회장

  • 입력 2003년 9월 23일 18시 01분


이일하 굿네이버스 회장이 굿네이버스가 후원하는 북한 육아원의 어린이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들고 대북지원사업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권주훈기자
이일하 굿네이버스 회장이 굿네이버스가 후원하는 북한 육아원의 어린이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들고 대북지원사업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권주훈기자
1998년 9월 28일 북한 남포시 남포항에 젖소 104마리의 울음소리가 힘차게 울려 퍼졌다. 젖소들이 컨테이너에서 내려 줄줄이 항구로 들어서자 주민들도 “야 저것 봐라, 젖소다. 정말 젖소야”라며 함성을 터뜨렸다.

배가 선착장에 도착하자 중년 남자가 바삐 뛰어다니며 인부들을 지휘했다. 사회복지법인 굿네이버스(전 한국이웃사랑회)의 이일하(李一夏·57) 회장이었다.

한국 사람이 북한에 소를 보낸 것은 고 정주영(鄭周永) 현대그룹 명예회장(98년 6월) 이후 2번째였고 민간단체로서는 처음이었다.

굿네이버스는 95년 중국 단둥(丹東)을 통해 북한주민들에게 빵을 전달하면서 북한을 인도적으로 돕는 사업을 시작했다. 북한 당국이 유엔경제사회이사회(ECOSOC)의 공인기구 자격을 인정한 97년부터는 직접 현지를 오가며 지원활동을 해 왔다.

그로부터 8년. 이 회장은 남한 땅에서 가장 경험 많고 북한 당국도 마음을 열어놓는 ‘대북 도우미’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히게 됐다.

“98년 9월과 11월 2차례에 걸쳐 젖소 200마리를 지원한 것은 배고픈 주민들에게 ‘당장 먹을 수 있는 것’보다 ‘먹을 것을 만드는 수단과 방법’을 지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당시는 북한 경제가 최악으로 치닫던 이른바 ‘고난의 행군’ 막바지 시기.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이전이어서 남북관계도 차가울 때였다. 소를 들여놓은 뒤 이 회장은 말로 다할 수 없는 힘든 일들을 이겨나가야 했다.

무엇보다 99년 말까지 200마리 가운데 71마리가 죽어버렸다. 사인(死因)이 불분명한 가운데 주민들은 남측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북한을 돕는 것을 못마땅해 하는 누군가가 몰래 이런 짓을 했다”는 식의 의구심 섞인 시선이었다.

“2000년에는 소에게 먹이라고 보내준 콩을 주민들이 죄다 먹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때는 정말 다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얼마나 배가 고팠을까 생각하니 이해가 되더군요.”

침례교 목사인 그는 74년 연세대 신학과를 졸업한 뒤 국제 구호단체인 월드비전에서 활동했다. 91년에는 한국이웃사랑회를 창립해 도움이 필요한 국내 어린이와 노인, 소말리아와 르완다 등지의 난민을 돕기 시작했다. 굿네이버스는 지금도 등록회원 12만명인 유엔 공인 민간단체로 아프가니스탄 르완다 등 세계 16개국에서 사회개발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런 그가 북한 돕기에 발 벗고 나선 이유는 “이왕이면 같은 민족을 먼저 돕자”는 생각 때문. 94년 북한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 뒤 각종 자연재해로 북한 주민들이 굶어죽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던 것이다.

97년 첫 방문을 시작으로 2003년 7월까지 20여차례 북한에 다녀온 그는 “첫 방문에서 이루 말할 수 없이 힘든 북한 경제의 현장을 봤다”고 전한다. 그러나 “이 어려움은 하느님께서 남과 북이 서로 화해할 수 있도록 주신 기회라고 생각했다”는 게 그의 회고다.

“배고플 때 먹을 것을 주는 것이 가장 기쁜 소식이요, 벗었을 때 입을 것을 주는 것이 그 사람을 얻는 길입니다. 우선 북한 동포들을 도와야겠다는 남측 사람들의 감동이 필요합니다. 그리고는 그들이 먹고 입는 문제부터 풀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이 회장은 6·15 공동선언 이후 북한 주민들이 남측과 함께 잘 살아보려는 기색이 더욱 역력해졌다고 말한다. 그러나 남측의 정부와 민간 일각에서는 무원칙하게 북한에 돈과 물자를 공급하고 있다는 이른바 ‘퍼주기’ 논란이 거세게 일었다. 이에 대한 이 회장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95년 이후 남한이 북한에 지원한 돈은 연평균 1604억원으로 국민 1인당 3400원에 불과합니다. 한 해에 전국에서 버려지는 음식물 비용 8000억원의 20%에 해당하는 수준이죠. 남과 북이 서로 마음의 문을 열고 믿음과 화해를 나눌 수만 있다면 더 퍼줘도 괜찮다는 생각입니다.”

어찌됐건 북한측은 이런 자세를 신뢰해 주었다. 그 결과 굿네이버스는 2003년 9월 현재 북한 전역에 목장 5곳과 육아원 14곳, 병원 1곳 등 30여개의 사업장을 지원하고 있다. 지난해 7월 40명을 시작으로 10월 100여명, 올 3월과 7월 각각 100여명 등 경제인과 정부관계자, 북한전문가 등 각계 인사로 구성된 대규모 방북단을 이끌고 서해 직항로 등으로 현지에 다녀오기도 했다.

그는 우리 후손들에게 평화로운 한반도를 물려주기 위해서도 기성세대가 조금 더 크게 보고 전향적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치적 통일보다 사회 경제적인 통합이 필수입니다. 사회 각 분야가 북쪽의 상대방과 교류하고 많은 사람이 만나 접점을 찾는 구체적인 프로그램이 필요한 거죠. 티끌이 모여 태산이 되듯 그렇게 조금씩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에서 통일이건 평화건 우리 곁에 조금씩 다가올 겁니다.”

이 회장은 이를 위해 북한에 관심이 있는 경제인들이 북한 당국과 협의할 수 있는 통로를 제공하고 학생들을 상대로 통일교육을 하는 등 민족의 화해와 협력을 돕는 비정부기구(NGO)로서의 역할을 더욱 확대하겠다고 말했다.신석호기자 kyle@donga.com

▼이일하 회장은…▼

1947년 충남 부여 출생

1965년 서울 성남고 졸

1974년 연세대 신학과 졸업

1973년∼국제 구호단체인 월드비전에서 활동

1978년 침례교 목사 안수 받음

1991년 사회복지법인 굿네이버스 사무총장

현재 굿네이버스 회장. 한국해외원조단체협의회장. 한국자원봉사단체협의회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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