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대통령의 태풍 속 뮤지컬 관람

  • 입력 2003년 9월 23일 18시 23분


노무현 대통령이 태풍 ‘매미’가 남부지방에 상륙했던 12일 저녁 뮤지컬을 관람한 것은 적절치 못한 행동이었다. 대통령이 공연장에 앉아 있을 때 태풍은 이미 제주도를 강타하고 시속 60km의 속도로 북상 중이었다. 영호남 일대에는 태풍경보가 내려졌고 전 공무원은 비상근무 중이었다. 국민은 가뜩이나 경제도 어려운데 태풍까지 겹치나 하는 걱정으로 마음을 졸였다. 국정의 최고책임자가 뮤지컬이나 감상하고 있을 상황은 결코 아니었다.

대통령이 문화 예술의 현장을 찾는 것은 좋은 일이다. 기분 전환도 하면서 국정운영 구상도 새롭게 가다듬을 수 있을 것이다. 문화 예술인들에게는 이보다 더 큰 격려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국가적 재난이 예고된 상황이라면 사정은 다르다. 대통령은 마땅히 제자리를 지켰어야 했다. 비상근무 중인 공무원들을 독려하고, 예상되는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였어야 했다.

청와대측은 대통령의 추석 연휴 일정으로 예약한 것이어서 취소하지 못했다고 하나 군색한 변명이다. 보통 사람들도 나라에 재난이 생기면 불요불급한 행사는 자제한다. 봄철 가뭄이 조금만 심해도 야유회를 취소하는 것이 우리의 정서고 미덕이다. 가족과의 약속이었더라도 가족만 관람토록 하고 대통령은 빠졌어야 했다. 대통령이 이러니까 경제부총리가 태풍 경고 속에서 골프 연휴를 보냈는데도 질책 한번 못한 것 아닌가.

대통령과 함께 뮤지컬을 관람한 비서실장도 제 역할을 다했다고 보기 어렵다. 국민이 받게 될 상실감과 파문을 조금이라도 생각했다면 대통령의 뮤지컬 관람을 만류했어야 했다. 그 정도 상황 판단과 직언 의지도 없이 대통령을 제대로 보좌한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더욱 유감스러운 것은 국민에게 실망을 안겨준 이번 일에 대해 청와대측이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히려 언론보도에 불만을 표시한다고 하니 민심을 제대로 읽고 있는지 의문이다. 노 대통령은 이제라도 국민에게 사과하는 게 옳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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