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도 국정수행과 정책에 대한 나라 안팎의 반응은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다. 노 대통령은 언젠가 “나에 대한 평가는 내가 할 것”이라고 했지만 심판은 감독이나 선수의 몫이 아니다.
▼정부 “시스템 중시” 말만 요란 ▼
아마추어는 없다는데 왜 이럴까. 자질과 능력이 국가대표 급에 못 미치는 사람에게 너무 큰 옷을 입힌 경우가 섞여 있어 그런 건 아닐까. 대통령이 가장 최근에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고른 최낙정씨는 너무 출중한 것일까, 미달일까.
아무리 차관에서 직행했다지만 임명된 지 며칠밖에 안됐으니 장관 수습(修習)하기에 바빠야 정상이다. 그런 판에 공무원 교육을 한답시고 나서서 대통령의 태풍 속 뮤지컬 관람을 옹호하는 데 열을 올렸다. 외국 지도자에 관한 거짓 사례까지 들먹이면서….
“대통령은 태풍 오면 공연 약속도 취소해야 하나”라고 외치는 그에게 태풍에 우는 어민의 눈물을 닦아 주십사 바란다면 눈치 없는 사람이 될 것 같다. ‘공무원은 좀 튀면 안 되나, 공무원이 설쳐야 나라가 산다’는 지론대로 자신은 잘 튀어서 ‘코드’ 덕을 봤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부하들이 장관을 닮아 ‘태풍 왔다고 어민만 쳐다봐야 하나’라며 엉뚱한 일로 설치도록 물들이지는 말라.
청와대가 장고(長考) 끝에 내놓은 이 해명은 또 어떤가. “대통령이 관저에 대기하면서 TV를 보나, 아주 가까운 행사장에서 예정된 일정을 진행하나 달라질 것은 하나도 없었다.”
태풍 상황이라 해서 대통령이 TV 보는 것 말고 할 일이 뭐 있었겠느냐는 뜻이라면 정말 놀랍다. 이 정도가 청와대 ‘프로’들이 찾아낼 수 있는 ‘태풍 속에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의 전부라면 암담하다.
현 정부는 시스템을 유난히 강조하는 정부다. 대통령은 “참여정부의 1인자는 시스템”이라 했고 비서실장은 “2인자도 시스템”이라고 거들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정부 시스템이 고장 나 있거나 누군가가 시스템을 고장 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우기 어렵다.
판교 학원단지를 둘러싼 코미디 같은 촌극이 그런 의문을 키웠다. 이 문제는 이미 작년 9월부터 떠올랐다. 그리고 지난달 초엔 더욱 구체화된 추진 방침까지 발표됐다. 그로부터 보름 뒤에 교육부총리는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신문을 보고 알았다”고 딴소리를 했다. 그리고 며칠이 흘러 백지화에 이르렀다.
국회에서 논란을 빚기 전에 정부 내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 도대체 어떤 정책조정 시스템을 작동했는가. 교육인적자원정책위원회는 정부조직표에만 있는 유령인가. 인적자원개발회의와 경제정책조정회의는 무얼 위해 있었는가. 청와대 정책실이란 곳은 이런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어떤 시스템적 역할을 했는가.
또 위도 원전센터 문제를 풀기 위해 정부는 어떤 시스템을 가동했는지 묻고 싶다. 이 정부 들어 기업 출자총액제한제도를 놓고 끊임없이 대립해 온 재정경제부와 공정거래위원회 사이에 조정시스템은 있는가.
경제정책에 있어서 경제부총리의 리더십은 실종됐다. 이런 상태라면 경제부총리는 필요 없다. 경제부총리가 경량급이라서 경제팀 장악력을 기대할 수 없다면 바꿔야 한다. 그렇지 않고 대통령이 정말 A급으로 신임한다면 확실하게 힘을 실어 줘야 한다.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경제정책은 산으로 갔다가 바다로 갔다가 계속 그럴 것이다. 청와대 정책실이 부처들에 대해 ‘잘 상의해서 잘해 주시오’ 하는 식으로 뒷짐을 지려면 정책결정 과정에서 철저히 빠지는 게 옳다. 부처들이 보고서 들고 청와대 들락거리는 낭비라도 없애야 한다.
▼대통령 “감 놔라 배 놔라” 자제를 ▼
대통령이 현안마다 앞질러 의견을 내는 것도 시스템적 접근이 아니다. 나아가 시스템을 고장 내는 결과를 빚을 수도 있다. 대통령이 “울산에 고속철도 역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고 해 버리면 결과는 크게 두 가지다. 그 말에 꿰맞추기 위해 국민적 부담을 늘리든지, 아니면 실언에 따른 신뢰 상실의 부담을 대통령이 지든지…. 건설교통부는 즉시 꿰맞추기에 나섰지만 문제가 그리 간단해 보이지 않아 걱정이다.
배인준 수석논설위원 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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