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이 분당의 기로에서 내부 갈등을 겪고 있던 8월 중순경 신당추진파의 한 핵심 관계자는 이처럼 노 대통령의 ‘코드 정치’를 비판했다.
대선승리가 대선기간 내내 자신을 떠받쳤던 민주당 내 주류와 호남이라는 ‘DJ의 유산’, 거기에다가 사회 내부의 개혁지향 세력의 연합군이 만들어낸 합작품인데도 집권 이후 청와대 ‘386참모’들에게 둘러싸인 듯한 노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비판한 말이었다.
국정운영에서뿐 아니라 실제 우여곡절 끝에 감행된 민주당 신당파의 탈당과 뒤이은 노 대통령의 민주당 탈당은 요즘 유행하는 ‘개코(개혁코드)론’의 결정판이라고 부를 만하다.
유신 독재 권력의 비호 속에 성장했던 신군부 세력이 80년 ‘유신잔재 청산’과 ‘사회정의 구현’을 기치로 내걸고 나선 이후 역대 집권세력이 반복해 온 ‘자기 뿌리에 대한 부정(否定)’은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하지만 과거 집권세력의 신당 창당이 ‘외연확대형’이었던 것과 달리 이번 창당극(劇)의 특징은 다분히 ‘응축형’ ‘코드 지향형’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노 대통령 자신이 부산지역의 지인들에게 토로했다는 “10석에 그치더라도 전국정당을 만들고 싶다”는 얘기나, 민주당 분당사태와 관련해 “(당이) 개혁되기를 바라는 데 찬성하는 사람과 찬성하지 않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란 발언이 등이 ‘코드론적 발상’이란 지적을 받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물론 가게를 신장개업(新裝開業)하겠다는데 평수를 늘리든, 평수를 줄여 마니아 취향의 ‘전문점’을 만들든 그것은 ‘그 집 사정’으로 치부할 수도 있다. 더욱이 ‘제대로 된 개혁정당을 만들고 싶다’는 신당추진 세력의 지향은 정치변혁을 바라는 상당수 유권자들의 오랜 열망(熱望)을 담아낼 수용체(정당)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우리 정치 현실에 비추어 일방적으로 비난할 일만도 아니다.
문제는 집권 7개월 만에 이뤄진 노 대통령의 탈당이 헌정 파행(跛行)적인 요소를 다분히 안고 있는데도 이 사실이 간과되고 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노 대통령이 신당에 입당하기까지 계속될 ‘여당 실종’ 상황에서는 정당정치의 기본인 ‘책임정치’도 실종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한 영남 독자가 최근 본보에 밝혀 온 견해에는 귀담아들을 만한 대목이 적지 않다.
“지난번 대통령 선거는 노무현 ‘개인’이 아니라 ‘민주당’이라는 정당이 선거주체가 돼 자금과 조직을 마련해 치른 것입니다. 비례대표 의원의 탈당시 국회의원직을 박탈하는 것도 정당정치를 보장하기 위한 장치로 알고 있습니다. 민주당 후보로 당선된 대통령이 선거중립 등의 정당하고 객관적인 사유 없이 소속당을 자진탈당한 것은 헌법정신에 대한 중대한 위반이 아닌가요.”
더욱 걱정되는 대목은 청와대측이 총선 이후 ‘다당제 구도’를 염두에 두면서도 ‘미국식 민주주의’를 모델로 한 대국민 직접 설득정치 마련에 나서겠다는 그림을 그리고 있는 점이다.
하지만 미국식 민주주의는 양당제 구도 아래 대통령이 소속당의 지지를 바탕으로 초당적 국정운영을 하는 시스템이란 점에서 우리의 정치지형과는 큰 차이가 있다. 혹시 청와대가 이 점을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청와대는 “현재 같은 ‘코드’ 중심의 국정운영이 계속될 경우 다당제 구도 속에 정치불안이 상시화되는 ‘남미형 대통령제’가 될 가능성이 많다”는 지적에 귀를 기울였으면 하는 생각이다.
이동관 정치부장 dklee@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