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宋씨 親北혐의 밝히고도 어정쩡

  • 입력 2003년 10월 1일 19시 05분


1일 국가정보원에 대한 국회 정보위원회의 국정감사에 출석한 고영구 국정원장. -서영수기자
1일 국가정보원에 대한 국회 정보위원회의 국정감사에 출석한 고영구 국정원장. -서영수기자
국가정보원이 1일 송두율(宋斗律) 독일 뮌스터대 교수의 친북 혐의를 대부분 밝혀내고서도 ‘공소보류’라는 단서가 달린 송치의견을 검찰에 제출해 그 내막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국정원은 지금까지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을 검찰에 송치하면서 기소, 불기소, 무혐의, 공소보류 중에서 하나의 의견만 명시했으며 검찰은 국정원의 전문성을 인정해 대부분 국정원의 의견대로 사건을 처리해왔다.

그러나 국정원은 그간의 조사과정에서 객관적인 자료를 통해 무거운 처벌을 받을 수 있는친북 혐의를 대부분 규명하고서도 기소도 아니고 불기소도 아닌 어정쩡한 의견을 낸 것이다.

이는 송 교수 처리를 둘러싸고 국정원 내부의 치열한 갈등과 그에 따른 타협의 결과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

우선 국정원 수사 실무자들은 송 교수가 북한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이자 당 중앙위원으로 선정된 경위 등을 구체적으로 밝혀낸 뒤 기소가 불가피하다는 의견이었으나 국정원 상층부가 국내외 여러 사정을 감안해 ‘공소보류’ 의견을 밀어붙이면서 내부 갈등이 심화됐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실제로 송 교수 조사를 맡은 대공수사국은 그동안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을 엄단해야 한다며 법대로 처리를 주장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국정원 관계자는 “지휘부가 조사 과정에서 ‘가급적 송 교수를 선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실무진에게 내비친 탓인지 지휘부와 수사팀 사이에 한동안 긴장 기류가 흘렀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송 교수의 변호인인 김형태(金亨泰) 변호사도 “국정원 수사 조직이 송 교수를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몰고 가 국정원장이나 기조실장의 이야기가 먹혀 들어가지 않는다”며 이런 분위기를 간접적으로 전했다.

이런 요인 때문에 국정원이 이례적으로 ‘이견(異見) 봉합’ 수준의 송치 의견을 낸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국정원의 송치 의견은 ‘공’을 검찰에 떠넘기면서 책임을 피하기 위한 조치로도 볼 수 있다.

조사 단계에서 송 교수의 혐의는 밝혀내되 송치 단계에서 중간적인 입장을 취해 수사에 대한 책임과 비판을 모면할 수 있다는 계산도 작용했다는 것이다.

국정원이 객관적인 자료를 통해 송 교수의 혐의는 밝혀냈지만 조사 과정에서 제시된 입증 자료가 법원에서 증거로 인정될지 여부를 알 수 없어 최종 판단을 검찰에 맡겼다는 얘기도 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총풍’ 사건 재판에서 법원이 ‘적법한 절차를 통해 수집한 증거’만을 인정해 검찰과 국정원이 관련자들의 유죄 입증이 난관에 부닥쳤던 경험도 참조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위용기자 viyonz@donga.com

황진영기자 buddy@donga.com

▼공소보류란 보안법사건에 적용…불기소처분의 하나▼

국가정보원은 1일 송두율(宋斗律) 독일 뮌스터대 교수 사건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하면서 “공소보류도 가능하다”는 단서를 달았다.

공소보류는 국가보안법 사건에 한해서만 내릴 수 있는 불기소 처분의 하나이며 처분이 내려지면 관련자들은 재판에 회부되지 않는다. 공소보류한 뒤 2년 안에 기소하지 않으면 같은 혐의로 처벌할 수 없다.

일반 형사사건의 기소유예와 성격이 비슷하지만 기소유예는 공소시효가 만료되기 전까지 상황 변화가 있으면 같은 사안으로 기소할 수 있다. 공소보류는 공안당국이 체포한 간첩을 이중간첩으로 활용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로 국가보안법에 그 근거가 마련되어 있다. 따라서 공안전문가와 국정원 일각에서는 공소보류의 취지를 고려할 때 이런 목적을 충족하지 못하는 송 교수에게 공소보류를 적용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한 국정원 관계자는 “1980년대 주사파 이론서인 ‘강철서신’의 저자인 김영환(金永煥)씨도 99년 공소보류 처분을 받았지만 김씨에게 내려진 공소보류 조치조차도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있었다”고 소개했다.

이 관계자는 “그 동안 대북공작을 위해서 비공개로 공소보류 처분을 많이 활용해 왔으며 김영환씨가 첫 사례도 아니다”고 덧붙였다.

이태훈기자 jeff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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