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국정원은 그간의 조사과정에서 객관적인 자료를 통해 무거운 처벌을 받을 수 있는친북 혐의를 대부분 규명하고서도 기소도 아니고 불기소도 아닌 어정쩡한 의견을 낸 것이다.
이는 송 교수 처리를 둘러싸고 국정원 내부의 치열한 갈등과 그에 따른 타협의 결과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
우선 국정원 수사 실무자들은 송 교수가 북한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이자 당 중앙위원으로 선정된 경위 등을 구체적으로 밝혀낸 뒤 기소가 불가피하다는 의견이었으나 국정원 상층부가 국내외 여러 사정을 감안해 ‘공소보류’ 의견을 밀어붙이면서 내부 갈등이 심화됐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실제로 송 교수 조사를 맡은 대공수사국은 그동안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을 엄단해야 한다며 법대로 처리를 주장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국정원 관계자는 “지휘부가 조사 과정에서 ‘가급적 송 교수를 선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실무진에게 내비친 탓인지 지휘부와 수사팀 사이에 한동안 긴장 기류가 흘렀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송 교수의 변호인인 김형태(金亨泰) 변호사도 “국정원 수사 조직이 송 교수를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몰고 가 국정원장이나 기조실장의 이야기가 먹혀 들어가지 않는다”며 이런 분위기를 간접적으로 전했다.
이런 요인 때문에 국정원이 이례적으로 ‘이견(異見) 봉합’ 수준의 송치 의견을 낸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국정원의 송치 의견은 ‘공’을 검찰에 떠넘기면서 책임을 피하기 위한 조치로도 볼 수 있다.
조사 단계에서 송 교수의 혐의는 밝혀내되 송치 단계에서 중간적인 입장을 취해 수사에 대한 책임과 비판을 모면할 수 있다는 계산도 작용했다는 것이다.
국정원이 객관적인 자료를 통해 송 교수의 혐의는 밝혀냈지만 조사 과정에서 제시된 입증 자료가 법원에서 증거로 인정될지 여부를 알 수 없어 최종 판단을 검찰에 맡겼다는 얘기도 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총풍’ 사건 재판에서 법원이 ‘적법한 절차를 통해 수집한 증거’만을 인정해 검찰과 국정원이 관련자들의 유죄 입증이 난관에 부닥쳤던 경험도 참조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위용기자 viyonz@donga.com
황진영기자 buddy@donga.com
▼공소보류란 보안법사건에 적용…불기소처분의 하나▼
국가정보원은 1일 송두율(宋斗律) 독일 뮌스터대 교수 사건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하면서 “공소보류도 가능하다”는 단서를 달았다.
공소보류는 국가보안법 사건에 한해서만 내릴 수 있는 불기소 처분의 하나이며 처분이 내려지면 관련자들은 재판에 회부되지 않는다. 공소보류한 뒤 2년 안에 기소하지 않으면 같은 혐의로 처벌할 수 없다.
일반 형사사건의 기소유예와 성격이 비슷하지만 기소유예는 공소시효가 만료되기 전까지 상황 변화가 있으면 같은 사안으로 기소할 수 있다. 공소보류는 공안당국이 체포한 간첩을 이중간첩으로 활용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로 국가보안법에 그 근거가 마련되어 있다. 따라서 공안전문가와 국정원 일각에서는 공소보류의 취지를 고려할 때 이런 목적을 충족하지 못하는 송 교수에게 공소보류를 적용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한 국정원 관계자는 “1980년대 주사파 이론서인 ‘강철서신’의 저자인 김영환(金永煥)씨도 99년 공소보류 처분을 받았지만 김씨에게 내려진 공소보류 조치조차도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있었다”고 소개했다.
이 관계자는 “그 동안 대북공작을 위해서 비공개로 공소보류 처분을 많이 활용해 왔으며 김영환씨가 첫 사례도 아니다”고 덧붙였다.
이태훈기자 jeff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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