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환씨 뉘우친후 대공수사 협조, 宋씨와 동일한 잣대 무리

  • 입력 2003년 10월 1일 23시 52분


정부 당국이 송두율(宋斗律) 독일 뮌스터대 교수 처리와 관련해 1980년대 주사파(主思派) 이론가인 김영환(金永煥·40)씨 사건을 주요 사례로 검토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송 교수를 김씨와 동일한 잣대로 비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김씨는 80년대 중반 대학가에 주체사상 이론서인 ‘강철서신’을 띄워 주사파이론을 소개한 사실상 국내의 ‘주사파 원조’격인 인물. 그는 91년 입북한 뒤 간첩활동을 했으나 주사파 이론에 염증을 느낀 나머지 99년 사상전향문을 쓰고 공소보류로 석방됐다.

적극적인 친북 활동으로 남한의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는 점에서는 김씨와 송 교수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김씨가 91년 월북해 김일성 주석을 만난 이후 돌아와 남한에 지하조직을 만들어 간첩 활동을 한 것이나 송 교수가 73년 북한 노동당에 가입하고 91년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을 만난 점 등은 유사하다.

그러나 과거의 행적에 대한 두 사람의 태도는 달랐다. 김씨는 99년 10월 검찰에서 공소보류 처분을 받기 전 과거 자신의 잘못을 통렬하게 뉘우치는 내용의 ‘반성문’을 여러 차례 제출했다.

김씨는 당시 반성문에서 “동포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하며 기회가 주어진다면 북한을 민주화시키기 위해 모든 힘을 바치고 싶다”고 밝혔다. 특히 김씨는 반성문에서 자신이 과거에 저지른 친북 활동을 모두 인정했다.

반면 송 교수는 지난달 29일 국정원에 노동당 탈퇴의사와 남한 실정법 준수 약속, 한국 국민에 대한 사과 등의 내용이 담긴 문서를 한 차례 제출했으나 국정원이 확신하고 있는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이라는 혐의는 강력히 부인했다.

특히 김씨는 공안 당국에 자수한 뒤 당국의 대공 수사에 적극 협력해 국정원이 남한 내 고정간첩단을 검거하는 데도 기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송 교수의 경우 아직까지 자신의 과거 활동에 대해서만 대부분 시인하거나 사과하는 모습을 보였을 뿐 앞으로 북한과 어떤 관계를 유지할 것인지 등에 대해 명시적인 입장 표명을 하지 않고 있다.

전직 국정원 고위 관계자는 “당시 김씨는 대학을 갓 졸업한 철부지 청년이었던 반면 송 교수는 사리판단을 충분히 할 수 있는 나이 많은 학자인 점도 같은 선상에서 비교할 수 없는 요인 중의 하나”라고 평가했다.

이태훈기자 jeff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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