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두율씨 회견]정치국원 임명 거부의사 왜 안밝혔냐

  • 입력 2003년 10월 2일 18시 25분


재독 학자 송두율(宋斗律·사진)씨가 2일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의 과거 행적을 적극적으로 해명하며 노동당 입당을 제외한 국가정보원의 조사 결과를 전면 부인했지만 수긍이 가지 않는 대목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북한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송씨는 이날 “후보위원을 수락한 바도, 활동한 바도 없으며 북한이 후보위원으로 활동할 것을 요구한 적도 없다”고 부인했다.

그런 한편 “북한이 정치국원으로 일방적으로 모자를 씌웠던 상황, 아무런 권한을 행사해 보지 않은 상황에서 ‘정치국 후보위원 김철수’라는 명칭에 동의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북한이 송씨에게 사전 의사 타진 없이 정치국 후보위원이라는 고위직을 맡겼다는 것은 선뜻 납득이 가지 않는다. 또 송씨가 이를 뒤늦게 알았다 하더라도 왜 적극적으로 거부하지 않았는지도 의문이다. 그는 그러나 “94년에 초청받을 당시 북측으로부터 ‘당신이 김철수라는 이름으로 초청돼 있으니 꼭 오라’는 이야기를 듣고 가게 됐다”는 점은 인정해 의문을 낳았다.

이와 관련, 국정원은 이날 “송씨 본인의 진술과 여러 정황 증거들을 종합해서 진술 조서를 작성했고 본인도 조서에 서명했다”며 송씨가 후보위원이 확실하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노동당 가입=송씨는 노동당 가입에 대해 ‘불가피한 통과의례’였다고 주장했지만 북한에서의 노동당 가입은 ‘혜택’이라는 점에서 이 역시 쉽게 수긍이 가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다.

1985년 입북, 간첩으로 활동하다 92년 독일에서 자수한 오길남(吳吉男)씨가 “북한에서 거물 대접을 받았으나 노동당 가입은 못했다”고 말할 정도로 북한에서의 노동당 가입은 쉽지 않다.

또한 70, 80년대 해외에서 반체제 활동을 벌이다 입북한 인사 중 노동당에 가입한 경우는 극소수에 불과해 송씨의 주장처럼 노동당 가입을 ‘통과의례’로 보기는 힘들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북한으로부터 받은 돈=송씨는 공작금이 아니라 교통비와 학술지원비로 받은 돈도 국정원의 발표처럼 15만달러가 아닌 7만∼8만달러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국정원은 연구비 명목도 있었지만 ‘공작금’도 있었다고 밝혀 ‘돈의 성격’을 둘러싼 논란이 예상된다.

국정원은 송씨가 73년 첫 입북 때 북한의 한 고위 당간부로부터 “독일 유학생을 중심으로 조국통일을 위한 조직을 결성하라”는 지시와 함께 2000달러를 받았고 88년 9월 입북 때에도 전금진(全今振·현 아태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이 “조국통일을 위해 힘써주고 유능한 유학생이 있으면 연결해 달라”는 지시와 함께 1000달러를 건네는 등 수차례에 걸쳐 ‘공작금’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송씨는 이러한 돈은 ‘교통항공비’라고 주장하고 있어 ‘돈의 성격’은 검찰조사에서 그 진위가 명확히 가려질 전망이다.

▽오길남씨 입북 권유=오씨는 입북 권유에 대해 “송씨는 원래 직접 화법으로 말하지 않는다”며 “방향제시는 있었다”고 말했고, 국정원도 “송씨가 ‘내가 오형(兄)이라면 북한에 다시 들어가겠다’ ‘북한밖에 기댈 곳이 있느냐’며 입북을 권유했다”고 밝혔다.

송씨는 이날 “어느 누구에게도 입북을 권유한 적이 없다”고 밝혔지만 직접 북한으로 가라고 하지 않았다고 해서 ‘권유’가 아니라고 보기는 힘들다는 의견이 많다.

국정원 수사결과와 송두율씨 주장 비교
국정원송두율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
송씨는 북한 공작원을 통해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선정됐다는 사실을 통보받았다.후보위원을 수락한 바도, 활동한 바도 없고 북한이 후보위원으로 활동할 것을 요구한 적도 없다.
오길남씨
입북 권유
“내가 오형(兄)이라면 북한에 다시 들어가겠다”며 입북을 권유했다.오씨에게 입북을 권유한 적이 없고 지금 이 순간까지 어느 누구에게도 입북을 권유한 적이 없다.
충성맹세문친필로 ‘(김정일) 장군님 만수무강축원문’과 ‘충성맹세문’을 10여차례 작성해 북측으로 보냈다.관행에 따라 축전을 보낸 적은 있지만 이른바 ‘충성서약문’을 쓴 적은 없다.
공작금유학생 포섭을 위한 공작금 등으로 모두 15만달러를 받았다.교통비 2만달러와 학술지원비 6만∼7만달러 등 모두 7만∼8만달러를 받았고, 이 돈이 공작금은 아니다.

길진균기자 leon@donga.com

▼학계 '이중적태도' 비판▼

송두율씨는 그동안 자신을 ‘경계인’이라고 표현해왔다. 그러나 북한 노동당 입당 사실 등으로 미뤄 볼 때 그가 스스로 ‘경계인’의 범주를 벗어났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송씨가 처음으로 ‘경계인’이라는 용어를 쓴 것은 지난해 10월 펴낸 ‘경계인의 사색’이라는 자신의 책 머리말에서다. 그는 이 책에서 “경계의 이쪽에도, 경계의 저쪽에도 속하지 못하고 경계선 위에 서있는 탓에 경계인은 매우 불안정한 상태에 있다”고 적었다. 그는 “반세기 넘게 갈라져 사는 조국의 남과 북 사이에서 상생(相生)의 길이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이를 찾아 긴장 속에서 여전히 헤매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국가정보원 수사 등을 통해 새로운 사실이 확인되자 그를 ‘대표적 경계인’으로 여겨온 학계는 적잖이 당혹해 하는 눈치다.

연세대 사회학과 김호기 교수는 “그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칼날 같은 경계 위에 위태롭게 서 있는 지식인인 줄 알았는데, 이번 조사 결과 그가 진정한 경계인인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고 말했다.

경남대 북한대학원 이수훈 교수도 “북한의 눈높이에서 북한을 이해하자는 송씨의 의견이 참신한 발상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번 조사 결과를 보니 나름대로 북한을 옹호하기 위한 정치적 의도가 담겨 있는 것 아닌가 의구심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송씨 스스로도 회견에서 “이 땅에 온 동기는 한쪽으로 치우쳤다는 자책감, 자기비판 때문이며 균형감각 상실에서 벗어나고픈 욕구가 강했다”고 밝힘에 따라 이 같은 비판을 일부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수경기자 skkim@donga.com

▼宋씨 일문일답▼

송두율씨는 2일 기자회견에서 북한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 및 공작금 수수 여부 등 일부 혐의에 대해 강력히 부인했다.

특히 그는 정치국 후보위원 여부에 대해 “정치국 후보위원이라는 사실을 북한으로부터 통보받은 바도 없이 사후에 인지하고 있었다”며 “아무런 권한을 행사하지 않은 상황에서 ‘정치국 후보위원, 김철수’라는 명칭에 의미를 둘 수도 없고, 동의할 수도 없다”고 반박했다.

―한국행을 결정했을 때 한국의 반응에 대해 걱정하지 않았나. 거짓말하지 않았느냐는 점 때문에 국민들이 나쁘게 생각할 수 있다.

“진정한 의미에서 남북을 화해시키려고 하는데 한쪽으로만 치우쳐 균형감이 깨져 여기에서 벗어나고픈 욕구가 강했다. 거짓말 부분은 조사과정에서 편린들이 드러나면서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

―자신을 남북의 경계인이라고 밝혔지만 노동당을 선택했다면 북한 체제를 선택한 것 아닌가.

“이 땅에 온 동기는 스스로가 한쪽으로 치우쳤다는 자책감, 자기비판 때문이다. 경계인이 지켜야할 기본적인 덕목으로서 남을 모르고는 경계인이 될 수 없다는 자기비판이 전제돼서 이번에 분단된 조국의 남쪽을 밟게 됐다.”

―자신을 정치국 후보위원이라고 주장한 황장엽씨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에 대해 지금 심정은….

“98년 10월부터 진행된 소송사건에 대한 입장은, 내가 정치국원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고 실질적으로 활동도 하지 않아 소송을 냈다.”

―사죄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는데 어떤 부분에 대해 사죄하나.

“뭘 사죄할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 문제는 해당 기관에서 법적으로 여러 가지 결론이 나오면 어떠한 결론이라도 수용하겠다. 제일 상상하기 싫은 상황은 추방이다. 37년 만에 왔는데 추방당하기 위해 이 땅을 밟았겠는가. 그 외에는 법에 의해 처벌받겠다.”

―청와대나 국정원에서 귀국시 신분 보장에 대한 언질이 있었는가.

“40년 만에 오는데 그런 게 있었겠나.” ―국정원에서 대질 심문을 한 오길남씨는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노동당 가입이 ‘통과의례’라고 밝힌 송씨의 발언은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했다.

“영구적으로 살러 간 사람하고 잠시 방문한 사람과는 차이가 나지 않겠는가.”

황진영기자 bud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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