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때문에 이날 노 대통령의 국민투표에 대한 ‘정치적 합의’ 요구는 국민투표의 시기와 조건을 둘러싼 정치권의 역(逆)제안과 노 대통령의 재(再)제안이 반복되면서 정국교착상태를 초래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낳았다.
▽연내 조기 국민투표 제안 배경=노 대통령이 불과 2개월 뒤인 12월 15일을 전후해 국민투표를 실시하자고 제안한 것은 재신임 카드라는 승부수의 파괴력을 더욱 높이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은 불신임을 받을 경우 대통령선거를 내년 4월 총선과 동시에 치러야 하고, 각 정당이 대선후보를 정할 시간적 여유가 필요하다는 점을 감안해 시점을 역산(逆算)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청와대 참모진 내에서조차 내년 1, 2월 국민투표 실시 주장이 대세였는데도 노 대통령이 그 시기를 더욱 앞당긴 데에는 재신임 투표에 대한 자신감이 반영됐을 것이란 분석이 가능하다. 노 대통령은 국회연설을 앞두고 전날 밤 12시까지 직접 원고를 작성해 수석비서관과 보좌관들도 일절 그 내용을 알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노 대통령은 또 이날 재신임을 받을 경우 내각과 청와대 참모진을 개편해 국정쇄신을 단행하겠다고 미리 향후의 정치일정을 천명하고 나서 승리를 자신한다는 관측을 뒷받침했다.
실제로 불과 4일 동안 ‘재신임 묻겠다’(10일)-‘국민투표로 하겠다’(11일)-‘연내 조기 실시하겠다’(13일)로 이어진 노 대통령의 잇따른 초강수는 지지세력을 결집시키는 한편 야권을 수세로 몰아넣는 정치적 효과를 거두고 있다.
▽정치권 합의 가능할까=노 대통령의 제안은 각 정당이 이해관계에 따라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어 완전한 정치적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한나라당은 일단 이번 재신임 투표가 최도술(崔導術) 전 대통령총무비서관 등 측근 비리의 책임을 따지는 데 국한돼야 한다면서 이번 사건에 대한 ‘선(先)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정치권의 개혁이나 야당의 국정 발목잡기와 연계하는 듯한 노 대통령의 발언이 이어지면서 재신임 카드의 순수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물론 홍사덕(洪思德) 원내총무와 당내 일부 소장파 의원들은 “정치적 합의에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어 연내 조기 국민투표 실시가 전격적으로 추진될 여지는 남아 있다.
민주당측은 노 대통령의 제안에 더욱 부정적이다. 국민투표 실시 여부는 국회가 결정할 사안이라고 강조하면서 노 대통령이 주도하는 재신임 드라이브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민주당이 이날 최 전 비서관 문제를 집중 거론하면서 대통령 측근 비리에 대한 국정조사 및 특검 도입을 검토할 수 있다고 차단막을 치고 나선 것도 그런 맥락이다.
청와대 내에서는 정치권의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리라는 기류가 확산되자 “처음에는 재신임 제안을 받겠다고 하더니 지금 와서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재신임 결단까지 발목을 잡겠다는 것이냐”며 한나라당을 비판했다. 또한 최 전 비서관 사건의 진상규명 요구에 대해서도 “검찰이 철저하게 수사하고 있다”며 발끈하는 반응을 보였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최호원기자 bestig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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