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월 임시국회에서 신설된 이 조항은 ‘정기국회 회기 중에 위원회 또는 본회의에 상정하는 법률안은 다음 연도의 예산안 처리에 부수하는 법률안으로 제한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은 그동안 정부가 정기국회 통과를 겨냥해 무더기로 법안을 제출하는 바람에 상당수의 법안이 심의를 제대로 거치지 못한 채 마구 통과돼 온 악습을 고치기 위해 신설된 규정. 일반 법률안은 2개월에 한 번씩 열리는 임시국회에서 수시로 처리하고, 정기국회에서는 ‘예산 국회’의 취지에 맞게 예산안 심사에 진력하겠다는 의도다.
실제 2000∼2002년 3년 동안 정부가 정기국회 중 법안통과를 목표로 8∼11월에 제출한 법안은 324건으로, 전체 제출 법안 442건의 73.3%에 이르렀다. 이 때문에 정기국회의 본회의 날에는 한꺼번에 수십건의 법안이 통과되는 일이 연례행사처럼 벌어졌다.
문제는 이런 관행을 타파하기 위한 새 국회법 조항이 최근의 정치상황과 맞물려 심각한 입법 공백사태를 낳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국회에서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야 3당이 이 조항을 앞세워 이번 정기국회에서 정부제출 법안을 통과시킬 수 없다고 나설 경우 내년 시행을 목표로 하고 있는 정부의 각종 정책은 완전히 표류할 수도 있다.
이 조항에는 단서규정으로 ‘긴급하고 불가피한 사유로 위원회 또는 본회의 의결이 있을 경우’에는 일반 법안을 처리할 수 있도록 했으나, 야 3당의 협조 없이는 법안을 상임위 회의에 상정하기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물론 현재 야 3당은 이 조항을 문제 삼아 정부 제출 법안에 대한 심의를 거부하려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다.
국회사무처 관계자도 “이번 정기국회에서 이 조항이 처음 적용되기 때문에 단서규정을 적용해 법안을 처리할 것으로 보인다”며 “박관용(朴寬用) 국회의장도 이 조항의 적용 문제로 상당히 고심해 왔으나, 이번 국회까지는 정부에 협조하겠다는 생각이다”고 전했다.
하지만 노 대통령과 야 3당간의 정치적 대결 상태가 지속될 경우 자칫 이 조항이 법안통과를 가로막는 ‘위력적인 무기’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실정이다.
한편 정부는 국가균형발전법, 지방분권특별법,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 등 3대 특별법을 비롯해 33건의 법안을 이번 정기국회에서 반드시 통과시켜야 할 핵심 법안으로 분류해 놓고 있다.
16대 국회 정부 제출 법안 건수 | |||
구분 | 1∼7월, 12월(임시국회제출) | 8∼11월(정기국회제출) | 총계 |
2000년 | 42 | 156 | 198 |
2001년 | 35 | 100 | 135 |
2002년 | 41 | 68 | 109 |
2003년 | 41 | 23(+28) | 64(+28) |
총계 | 159 | 347(+28) | 506(+28) |
:국회법 제93조의 2:
정기회 기간 중에 위원회 또는 본회의에 상정하는 법률안은 다음 연도의 예산안 처리에 부수하는 법률안에 한한다. 다만 긴급하고 불가피한 사유로 위원회 또는 본회의 의결이 있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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