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신임의 정치적 복선 ▼
여기서 애매한 정치적 논리와 최면성 단어를 모두 걷어내고 재신임의 속내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재신임이란 기본적으로 ‘나가지 않겠다’는 결심의 강조어법이다. 떠날 사람은 재신임을 묻지 않는다. 그렇다면 재신임이 겨냥한 목표는 무엇인가. 대통령 말대로라면 ‘환경개선’이다. 언론 환경, 국회 환경, 지역민심 환경이 나쁘기 때문에 국정운영이 제대로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본심은 한마디로 견제세력을 일거에 제압했으면 하는 정국 장악력 강화에 있는 것 아닌가. 국민투표는 우군에 대한 지원사격 요청인 셈이다. 측근 비리 의혹에 대한 도덕적 수치심을 도입부로 포장했지만 ‘재신임 국민투표’의 실상은 이처럼 복선이 어지럽게 깔린 정치적 기폭제다. 그 도화선이 내년 4월 국회의원 총선거에 이어지는 것은 물론이다. 총선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한 포석의 의미도 숨어 있다는 말이다.
이제 대통령에게는 두 가지 선택이 있다. 성사가 불확실한 정치적 타결을 밀고 당기면서 끌고 나가는 것과 다시 한번 극적 선회 효과를 겨냥해 ‘재신임 혼전’을 끝내는 일이다. 여기서 재신임 공방을 불러온 국정혼란의 근본원인은 대통령에게 있다는 원론적 공방으로 되돌아갈 생각은 없다. 국민투표의 위헌 여부를 논하지도 않겠다. 현재 여건에서 현실적인 선택이 무엇인지를 따져 보자는 말이다. 사회가 흘러갈 곳이 뻔하고 그 길이 아찔해서다. 결론을 먼저 꺼내자면 ‘재신임 중단’ 선언이다. 그럴 만한 현실적 이유가 있다.
먼저 재신임의 당초 속내가 그랬듯이 중단한다고 해서 대통령직을 떠나는 것은 아니다. 주변 견제세력 제압과 정국 장악력 강화라는 재신임의 또 다른 목표는 이루지 못한다 하더라도 비슷한 효과는 거둔 셈 아닌가. 실제로 견제세력의 제압은 국민투표로 이루어질 일도 아니다. 국민투표에서 설령 재신임을 받는다 한들 무엇이 크게 달라지겠느냐는 지적이 많은 것도 같은 이유다. 대통령의 홍위병을 자임하는 세력이 이미 나타났듯이 지지세력을 흔들어 깨우고 긴장시켰다는 점에서 대체효과는 있었다. 여기서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지금 국민투표 실시 주장에는 두 가지 흐름이 있다는 점이다. 여론조사의 재신임 예상결과를 기대하는 친노세력 못지않게 이번 기회에 불신임을 밀어붙이자는 반노세력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는 사실이다. 국민투표 찬반운동 기간 중 대통령 스스로 밝힌 ‘축적된 국민불신’을 부각시킨다면 승산이 있다는 주장이다. 여기서 역대 ‘투표민심’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억강부약(抑强扶弱)의 정서 때문인지 투표민심은 절대적 강자를 용인하지 않았다. 역대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한쪽으로 잇달아 승리의 꽃다발을 몰아준 적이 거의 없다. 국민투표는 총선과 다르다 하겠지만 장담할 일은 아니다. 여론조사 예상 재신임률에 너무 기대하지 말라는 말이다.
▼총선에서 결판난다 ▼
보다 중요한 것은 나라와 국민은 어떻게 되겠느냐다. 재신임 찬반 양측이 사생결단식으로 맞붙었을 때 국론은 갈라지고 국정은 흔들리면서 경제는 망가지고 만다. 얼마나 깊은 상흔을 두고두고 남기겠는가. 또 1년에 대통령선거를 두 번 치르는 셈인데 그것이 온당한 방향인지 묻고 싶다. 국민투표 예산 1000억원의 새로운 부담도 납득하기 어렵다.
이제 정치적 타결도 마냥 끌고 갈 수는 없다. 재신임 국민투표가 안 되는 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비슷한 뉘앙스를 미리 풍겼던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에 대한 경고조치 이유를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여러 말 할 것 없다. 재신임 중단뿐이다. 어느 쪽도 더 얻을 것은 없지만, 잃을 것도 없다. 어차피 내년 총선에서 결판이 난다.
최규철 논설주간 ki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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