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면 말고식 폭로 무성… '정대철의원 200억 수수설' 등

  • 입력 2003년 10월 22일 19시 04분


“국회가 ‘오럴 해저드’(말 해이)로 무너져 내리고 있다.”

22일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만난 여야 의원들은 최근 일부 의원들이 대정부질문을 통해 ‘근거가 불확실한’ 폭로를 잇달아 터뜨리고 있는 현상을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에 빗대 이처럼 개탄했다.

특히 통합신당 의원들은 전날 한나라당 심규철(沈揆喆) 의원이 ‘정대철(鄭大哲) 전 민주당 대표의 SK비자금 200억원 수수설’을 제기한 데 대해 “면책특권 뒤에 숨어 자신들의 범죄행위를 물타기 하려는 것”이라고 성토하며 면책특권 제도의 근본적 재검토를 요구했다.

이종걸(李鍾杰) 의원은 이날 본회의 의사진행 발언을 통해 “신성한 국회가 조직적인 흑색선전의 장(場)으로 변질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를 씻을 수 없다”며 “더 이상 면책특권을 악용해 국회를 오염시키는 행위가 없도록 면책특권 포기 절차를 밟자”고 제안했다.

이에 앞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김원기(金元基) 창당주비위원장은 “면책특권은 국회의원이 권력으로부터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인데, 이런 식으로 행사(악용)된다면 순기능과 역기능을 심각히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장영달(張永達) 의원은 “정치적 음해와 공작은 면책특권에서 제외되도록 법안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날도 ‘아니면 말고식 폭로’는 이어졌다.

민주당 조한천(趙漢天) 의원은 대정부질문에서 “한나라당 최돈웅(崔燉雄) 의원이 (SK로부터) 수수한 100억원이 이회창(李會昌) 전 한나라당 총재의 사조직과 이 전 총재의 부인 한인옥(韓仁玉)씨에게 전달됐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고 폭로했다. 하지만 그는 발언 후 기자와의 통화에서 “주변에서 떠도는 소문을 들었을 뿐이다. 물증이나 발언자 등 근거는 없다”고 말했다. 민주당 관계자들도 “조 의원이 한인옥씨를 거론한 것은 무리였다. 한나라당의 근거 없는 폭로 행진에 동참한 꼴이 됐다”고 난감해 했다.

이런 상황을 보다 못한 박관용(朴寬用) 의장은 “의원들은 아무리 면책특권이 있어도 신중하게 근거를 갖고 발언해야 한다. 이런 관행을 고치자는 것이 국회를 개혁하자는 것 아니냐”며 여야 의원들이 면책특권 뒤에 숨은 무책임한 폭로에 대해 반성할 것을 당부했다.

고건(高建) 국무총리도 면책특권 필요성 여부를 묻는 의원들의 질문에 “국회의원의 의정활동을 뒷받침하기 위해 일정 정도는 필요하겠지만 면책특권에도 일정한 룰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훈수’했다.

박성원기자 sw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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