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송수남/정치도 예술처럼

  • 입력 2003년 10월 24일 18시 21분


코멘트
예술에서는 조화(調和)가 중요하다. 어린이 공원에 세울 조각과 대학교 도서관 앞에 세울 것이 다른 것은 조각과 주변 환경의 조화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교실 벽에 붙일 그림과 체육관 벽에 붙일 그림이 다른 것도 같은 이치다.

멜로디 리듬 하모니는 음악의 세 요소다. 여기서 하모니(harmony)는 화음 또는 화성(和聲)이라고 하는데, 바로 조화를 말한다. 오케스트라 악기들의 소리는 제각기 다르지만 제멋대로 소리를 내지 않고 조화를 이룬 화음을 창조하기에 듣기 좋은 것이다.

▼지휘자 역할은 ‘모든 것의 조화' ▼

정치에서는 대통령, 국회의장, 여당과 야당의 대표들, 그리고 국회의원들이 중요한 이슈에 대해 멋있고 치열하게 혹은 유연하게 조화를 깨뜨리지 않고 토론을 하면 국민은 멋있는 경기나 훌륭한 연극을 보듯 즐기는 가운데 많은 것을 깨닫게 되고 정치인들도 국가와 국민을 위해 좋은 정책을 개발하게 될 것이다.

대통령은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서로 다른 악기들의 소리가 어우러져 때로 우렁차고, 때로 장엄하며, 때로 경쾌한 소리를 창조하듯이 여야의 서로 다른 주장을 조화롭게 수렴해 국가와 국민을 위한 정책을 개발하게 하여야 한다.

지휘자가 자기 코드에 맞는 바이올린만 소리를 내게 하고 심벌즈며 트럼펫 소리는 내지 못하게 한다면 이는 심벌즈나 트럼펫의 연주자들의 잘못이 아니고 지휘자의 잘못이다.

정치는 각 부문의 소리를 조화롭게 해 청중의 귀를 즐겁게 하는 무대예술 같은 것이 돼야 한다. 대통령과 장관들 그리고 국회의원들이 조화를 이뤄 토론을 하면 국민은 자신이 동의하지 않는 견해를 피력한 분에게도 존경하는 마음을 갖고 이를 경청할 것이다. 토론의 질서란 회의의 규칙이며, 다수결의 원칙이며, 토론 상대방에 대한 예의이다.

이는 또 토론의 전제 개념을 어떻게 정의(定義)할 것인지 합의하는 것이기도 하다. 예컨대 국회가 장관 해임건의안을 통과시키고, 감사원장 임명동의안을 부결시켰기 때문에 국정(國政)에 혼란이 있었다는 주장을 놓고 토론을 한다면 먼저 ‘국정’의 개념이 무엇인지에 대한 합의가 있어야 한다.

국정에는 국회가 하는 일도 포함된다. 헌법이 부여한 권한에 따라 국회가 해임건의안을 결의하고 임명 동의를 거부하는 것도 국정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의 그 같은 결정 때문에 국정 혼란이 초래됐다고 주장하는 것은 국회가 하는 일은 ‘국정의 울타리 밖’에 있음을 전제하는 얘기가 될 것이다. 대통령이 행정부를 지휘하는 데에 다소의 지장이 초래됐다고 하면 될 터인데 이걸 국정 혼란이라고 하는 것은 잘못이다.

정치 지도자는 한국화가나 동양화가들이 그림을 그릴 때 여백(餘白)을 남기듯이 여유가 있어야 한다. 빈 공간인 여백을 창조하듯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말아야 한다.

노자(老子)는 도덕경에서 ‘그러므로 성인은 무위로 일을 처리하고 말없는 가르침을 실행한다(是以聖人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고 했다. 무위(無爲)는 무리(無理)한 일을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한다는 뜻이다. 무리하지 않으면 여유가 생긴다.

‘행불언지교’는 말없이 가르침을 행한다는 뜻이니, 이를 실천하면 말로 인한 피해가 없을 것이다. 또 청어무성(聽於無聲), 즉 침묵하는 다수 백성의 ‘소리 없는 말’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럴 때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주변 사람들과 조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무리하지 않을때 ‘여백의 美’▼

논어에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不恥下問)’고 했다.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겸손해야 한다는 것이리라. 그러나 오만한 사람이 높은 자리에 오르면 다른 사람들을 제자 수준으로 보고 가르치려는 말만 하기를 좋아한다. 이렇게 되면 당연히 주변과의 조화가 깨져버린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하모니를 이뤄내듯 조화를 창조하는 정치지도자를 보고 싶다. 화가가 여백을 남기듯 여유를 만드는 정치가 필요하다. 성인이 불필요한 말을 하지 않듯 불언(不言)의 지혜를 실천하는 정치인이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송수남 홍익대 교수·한국화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