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 '대선자금 특검'수용이냐 거부냐…청와대도 오락가락

  • 입력 2003년 10월 26일 23시 14분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가 26일 청와대 회동에서 대선자금에 대한 특검 실시를 제안한 데 대해 노무현 대통령은 “정치권이 결단을 내리면 얼마든지 할 수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검찰 수사에 불공평이나 부적절한 것이 있는지 특검 요인이 되는지 생각해보겠다. 정부조직의 최고책임자로서 특검을 논의하는 것 자체가 적절하지 않다”고 명확한 답변을 피했다.

이를 두고 청와대측은 노 대통령이 특검 수사를 수용한 것이냐, 아니면 거부한 것이냐를 두고 하루 종일 입장정리를 제대로 못한 채 오락가락했다.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은 추가 브리핑에서 “노 대통령이 특검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해석하는 분도 있는 것 같지만, 노 대통령은 꼭 특검이 아니더라도 철저한 수사가 이뤄질 것이라고 문제 제기를 한 것”이라며 노 대통령의 입장을 ‘유보’ 쪽으로 해석했다. 이 같은 설명에는 자칫 ‘특검 수용’으로 비칠 경우 검찰을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도 깔려 있었던 듯하다.

그러나 잠시 후 정무수석실에서는 노 대통령이 최 대표의 특검 제안을 거부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유인태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은 “현재 검찰이 수사 중인 사건(SK비자금 사건 지칭)을 특검으로 가져갈 수는 없다”고 전제한 뒤 “최 대표가 얘기한 것은 ‘대선자금 전반’에 대해 특검을 실시하자는 것이고, 이를 정치권이 합의하면 노 대통령은 그 특검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취지의 답변을 한 것이다”고 밝혔다.

유 수석의 해석에는 ‘특검 반대’로 비칠 경우 한나라당에 밀리는 것처럼 보일 것이란 우려와 함께 특검을 하더라도 별로 손해 볼 일이 없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핵심 관계자는 “제일 찜찜한 쪽은 한나라당 아니겠느냐. 오히려 한나라당 내부에서 특검을 반대할지 모른다”며 최 대표의 특검 제안에 무게가 실려 있는 것인지에 의구심을 표시했다.

그렇지만 윤 대변인은 이날 저녁 또다시 “노 대통령은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특검 문제에 답변을 피한 것이다. 특검 제안을 수용한 것은 아니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검찰 반응]"수사 진행중인데 적절치 못한 얘기"▲

한나라당이 26일 대선자금에 대한 특검 도입 문제를 거론하자 검찰은 공식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불쾌한 기색이 역력했다.

특히 SK 및 현대 비자금을 수사중인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검사들과 서울지검 검사들 사이에서는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적절치 못한 얘기”라는 반응이 주류를 이뤘다.

대검 수사팀의 한 간부는 “정치권에서 특검을 한다면 우리가 막을 수 없는 것이 아니냐”며 “그러나 검찰은 특검의 성사 여부와 상관없이 수사에 전념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간부는 “수사 도중 검찰 수사의 한계 또는 문제점이 도출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치권이 특검 얘기를 꺼낸 것은 어떤 저의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고 말했다.

서울지검의 한 간부는 “한나라당의 특검 제의는 검찰 수사에 대한 정략적 반발의 성격도 있다고 본다”며 “만약 이런 차원에서 특검을 언급한 것이라면 특검 논의를 즉각 철회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검찰이 투명한 절차를 거쳐 공정한 수사 결과를 내놓는다 해도 내년 총선을 앞둔 미묘한 시점이어서 정쟁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이유로 특검에 SK비자금 수사를 넘겨야 한다는 의견도 조심스럽게 대두되고 있다.

서울지검의 한 검사는 “검찰이 여야를 가리지 않고 SK비자금에 대한 수사를 해도 정쟁은 더욱 심해질 것”이라며 “여야 논의를 거쳐 특검이 이 사건을 수사하는 것도 형평성 시비를 막을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라고 말했다.

정위용기자 viyonz@donga.com

길진균기자 l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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