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홍현익/北核해결 지금이 기회다

  • 입력 2003년 10월 27일 18시 09분


중국 베이징(北京)에서의 1차 6자회담 뒤 두 달 동안 신경전을 벌여 온 미국과 북한이 2차회담 개최를 모색하고 있다. 북한은 25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제시한 대북 ‘서면 다자 안보보장’ 제안을 고려할 용의가 있음을 밝혔다. 북한의 이번 반응은 ‘동시행동 원칙’이란 단서가 붙은 것으로, 서면보장의 전제조건으로 ‘북한의 핵폐기 진전’을 강조한 부시 대통령의 입장과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오랫동안 고수해 온 북-미 불가침조약 체결 주장을 사실상 철회했다는 점에서는 진일보한 것이다.

▼‘서면 안전보장’美-北 접점 생겨 ▼

북한의 태도 변화는 4월 3자회담에서의 핵보유 가능성 시사로 자초한 국제적 고립, 부시 행정부의 초지일관한 양자조약 체결 거부, 한미일 공조 유지, 그리고 중국의 한반도 비핵화 압박 등 국제 정세가 불리함을 인식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특히 계속 핵개발쪽으로 나아가면서 미국에 불가침조약을 압박하는 전술은 이제 거의 한계점에 이르렀고 막상 핵실험 또는 핵보유 선언을 할 경우 국가 지위 향상과 협상력 증대 효과보다 그로 인해 초래될 절대적인 국제 고립, 나아가 미국의 예방적 선제공격을 부를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한 듯하다.

이 같은 국면 변화는 우리에겐 호기가 아닐 수 없다. 우리로서는 늦어도 내년 봄까지는 핵문제가 안정적인 해결 구도 속에 들어가도록 해야 한다. 시기가 늦어지면 자칫 이 문제가 내년 여름 이후 본격화할 미국의 대선 정략에 휘말릴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북핵 문제의 본질을 살펴보면서 전략방향을 제시해 본다.

북핵 문제는 군사안보 문제이기도 하지만 경제위기 타개를 포함한 체제 생존이 절박한 북한과 동북아 질서 주도권 유지를 염두에 두고 있는 미국이 의도적으로 벌이는 정치외교적 ‘게임’의 성격도 강하다. 이는 양국이 제시한 해결안을 비교하면 형식과 순서의 차이가 있을 뿐 내용면에서 큰 차이가 없다는 것으로도 입증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가 위기로 치달은 것은 양국간에 기본 신뢰가 없는 데다 미국은 초강대국의 체면을 지키려 하고 북한은 사생결단식으로 ‘주체’를 강조하고 추구하기 때문이다.

북핵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양국간 신뢰의 기반을 마련해 주고 체면을 살려주면서 실리를 적절히 분배해줄 수 있는 중재자가 필요하다. 노무현 정부가 중재자 역할을 자원했지만 미국의 한국 부자격론 제기로 난관에 빠졌다. 일본은 북한의 거부감으로 그런 역할을 수행하기 어렵다. 이에 중국이 북한체제 유지, 난민 유입 예방, 베이징올림픽 분위기 조성, 미국의 경제·무역 협력 기조 유지, 대만 문제 등을 고려해 자진해서 적극적인 중재 역할을 맡아 왔고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게 사실이다.

이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우선 북핵과 관련한 대내외적인 약속을 이행하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재정립해야 한다. 먼저 그간 일관되게 주장해 온 ‘북핵 불용’을 실천하기 위해 우리가 수용할 수 있는 ‘북핵’의 한계선이 구체적으로 어느 단계를 지칭하는지를 확정해 비공개적으로라도 이를 북한에 엄중히 제시해야 한다.

▼2차 6자회담 한미일 공동보조를 ▼

또 ‘북핵 문제의 진전에 비춰 남북경협을 추진한다’는 미국과의 약속을 지킴으로써 대내외의 신뢰를 회복하고 한미 관계와 남북 관계를 일거에 재정립해야 한다. 이는 남북 경협이 한반도 긴장완화에 도움을 주기도 했지만 동시에 미국의 대북 압박과 관련해 북한측에 도피처를 제공하기도 했다는 의혹을 불식시키는 길이다.

또한 북한을 타협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북한의 입장을 강하게 두둔해 온 러시아가 좀 더 적극적으로 북한의 핵 포기를 종용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끝으로 정부는 2차 6자회담에서는 한미일 공동 대북 제안을 도출할 수 있도록 3국간 사전 협의에 적극 나서야 한다. 이런 노력들이 성공한다면 북한은 합리적인 타협 이외의 길로 나아가기 어려울 것이다.

정부는 6자회담의 틀을 선용해 동북아 다자안보 협력체제 건설을 도모함으로써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켜야 한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연구위원·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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