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김용순비서, 금강산관광 성사시킨 對南문제 실력자

  • 입력 2003년 10월 27일 18시 43분


26일 사망한 김용순 북한 노동당 대남담당 비서가 2000년 9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사로 서울을 방문했을 때 김포공항에서 꽃다발을 받고 웃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26일 사망한 김용순 북한 노동당 대남담당 비서가 2000년 9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사로 서울을 방문했을 때 김포공항에서 꽃다발을 받고 웃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26일 사망한 김용순(金容淳) 북한 노동당비서는 북한의 대남 문제를 실질적으로 이끈 실력자였다.

그는 2000년 6월 14일 평양 백화원초대소에서 열린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과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정상회담에 북측에서는 유일하게 배석했을 만큼 김 위원장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1934년 평남 평원군에서 태어난 그는 김일성종합대 법학부 국제관계과를 졸업한 뒤 모스크바대에 유학했다. 이어 1970년 주 이집트 대사를 지내는 등 당 국제부에서 외교 분야의 실무를 담당하다 90년 5월 당 중앙위 비서국 비서(국제담당)를 맡았고, 92년 12월 당 정치국 후보위원이 되면서 대남담당 비서로 보직을 전환했다.

94년 7월 김일성(金日成) 주석 사망시 조문행사장의 친인척 자리에서 김 위원장의 여동생(경희·敬姬)과 나란히 서 있다가 오열하는 그녀를 부축하는 모습이 목격돼 김 위원장의 가까운 친척이 아니냐는 얘기가 나돌기도 했다.

그가 남북문제에 실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은 98년 현대의 금강산관광 사업을 성사시키면서부터. 이때부터 그를 통하지 않으면 남북경협은 어렵다는 얘기가 있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그의 사망으로 남북 교류협력에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보기도 한다. 그러나 정부 관계자는 “남북관계가 그동안 제도화 단계로 접어들었기 때문에 그의 사망이 남북관계 진전에 걸림돌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은 “김 비서는 애증이 교차하는 인물”이라며 “함께 머리를 맞대고 정상회담을 준비하기도 했고 2000년 나의 초청으로 서울에 왔을 땐 국군포로와 납북자 문제를 놓고 치열하게 싸우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김형기(金炯基) 전 통일부 차관은 “김 비서는 통이 크고 융통성 있게 회담을 했던 점에서 그의 사망이 아쉽게 느껴진다”며 “이제 남북 대화일꾼들이 세대교체를 하게 되는 만큼 북에서도 남측을 잘 알고 이해하는 사람들이 나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통일연구원 허문영(許文寧) 연구위원은 “김 비서는 한반도 문제의 특성인 국제문제와 민족문제를 잘 이해했던 전문가라는 점에서 후임자 물색이 쉽지 않을 것”이라며 “후임자 물색 과정에서도 국제문제와 대남문제를 두루 알고 있는 사람이 선택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현재 가능성이 점쳐지는 인물로는 임동옥(林東玉) 통일전선부 제1부부장과 강관주 당 대외연락부 부장, 전금진(全今振) 이종혁(李種革) 송호경(宋浩景)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 등이 거론된다. 이 가운데 국제문제와 남북문제를 잘 알고 당 비서의 지위에 근접한 인물은 강 부장, 송 부위원장 등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김영식기자 spear@donga.com

▼정부 조의 표명할까▼

김용순(金容淳) 북한 노동당 대남담당 비서의 사망과 관련해 정부가 어떻게 조의를 표명할 것인지 관심을 끌고 있다.

1994년 7월 북한의 김일성(金日成) 주석이 사망했을 때는 이부영(당시 민주당) 의원의 조문 발언으로 사회적 논란이 빚어진 가운데 정부가 민간조문단의 방북을 불허해 북측으로부터 반발을 샀다. 정부는 당시 북측에 조의를 표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후 남북관계가 진전되면서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북한은 2001년 10월 현대그룹 정주영(鄭周永) 회장 사망시 송호경 아태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을 대표로 한 4명의 조문단을 서울에 파견했다. 또 올 8월 정몽헌(鄭夢憲)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이 사망했을 때도 아태평화위 차원의 조전(弔電)을 보내고 평양과 금강산에서 대규모 추모행사를 하기도 했다.

이 같은 전례가 있기 때문에 정부 내에선 조문까지는 모르지만 조의 표명은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견해가 없지 않다.

정세현(丁世鉉) 통일부 장관이 이날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통일포럼에서 “김용순 비서를 대면한 적은 없지만 (그가) 남북관계 업무를 담당해왔다는 점에서 참으로 안된 일”이라며 “인간적으로 조의를 표한다”고 말한 것도 이 같은 조심스러운 분위기를 반영한다.

그러나 최근 12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 북한이 남측의 반북단체 해체를 요구했고 송두율(宋斗律)씨 파문이 아직도 가라앉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가 공식적인 조문이나 조의 표명을 할 경우 이념적 갈등이 빚어질 소지도 있다.

통일부 관계자는 “대북문제에 대한 국민정서가 아직은 반반으로 갈려 있는 상황임을 감안할 때 정부 차원의 조문단을 보내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며 “실무 차원에서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고 정치적인 판단에 따라 결정해야 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김영식기자 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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